[기자의 눈/이승재]한달만에 말바꾼 ‘그때 그 사람들’

  • 입력 2005년 1월 25일 17시 59분


코멘트
“그런 내용 절대 없어요.”

1979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살해된 이른바 10·26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2월 3일 개봉 예정)에 박 전 대통령의 성생활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다는 풍문이 나돈 지난해 12월 20일. 촬영을 마친 이 영화의 내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작자인 MK픽쳐스 심재명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도대체 어떤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찍지도 않았다.”

그러나 24일 밤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이 영화는 한 중년 여성이 정보부 직원에게 늘어놓는 얘기를 담은 도입부에서부터 심 사장의 말과 달랐다. “새벽에 (우리 딸) 온몸을 ‘곱다곱다’ 하면서 쓰다듬으셔서…벗은 채로 어른을 수발 들었어요…이 어른이 다시 품어 주시고….”

또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심 사장의 말과 달리 이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이 일본어로 말하는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온다. 그뿐 아니라 “10·26에 가담하게 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블랙코미디”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이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소복 차림의 딸 근혜(槿惠) 씨가 눈물을 흘리는 기록 화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영화사 측은 사전에 “어떤 인물도 실명이 거론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역시 이 말도 “김재규가 그랬대(살해했대)”라는 한마디 대사로 무너졌다.

영화 속 박 대통령의 잦은 일본어 사용이 “얼마나 확인된 것이냐”는 질문에 이 영화의 임상수 감독은 “그 세대라면 일본어를 그 정도는 쓸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10·26사태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접어 두더라도 이 사건은 불과 26년 전의 과거다. 살해된 인물의 딸이 현재 제1 야당 대표인 데다 상당수 관련자들이 현존한다.

상상은 자유다. 예술은 아름답다. 그러나 예술적 상상이 상업영화란 대중매체를 통해 ‘판매’될 때는 책임이 따른다. ‘그때 그 사람들’ 제작자가 한 달 전에 밝힌 영화 내용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는 마당에 26년 전 역사를 다룬 이 영화의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이때 이 사람들’도 영화감이다.

이승재 문화부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