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9월 16일 17시 1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왜 이 사람은 계속 공포영화만 찍고 있을까? 장르 영화로서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데뷔작 ‘식스 센스’에서부터 ‘언브레이커블’, ‘사인’ 그리고 이번 영화 ‘빌리지’까지 그는 늘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자기 영화의 주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처럼 세상이 공포스러울 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데 때로 공포영화만 한 것이 없다.
‘빌리지’는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미스터리 공포영화’다. 공포영화라고 해도 일단 ‘샤말란 표’라는 딱지가 붙으면 한참 다른 공포물이 되기 때문이다. ‘빌리지’가 그렇다.
![]() |
이번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공포영화라기보다 비극적인 삼각 로맨스처럼 보이기도 하고 역설적인 의미의 가족 드라마로 보이기도 한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한 작고 평화로운 마을. 이 마을에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근심이 있다. 마을 밖 숲에 이들을 바깥 세계와 차단시키는 괴물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 평화로운 마을에 괴물이 침입하기 시작하고 마을은 일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그 와중에도 두 청춘 남녀는 사랑에 빠지고, 여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가 여자의 연인을 칼로 찔러 중태에 빠뜨린다. 여자는 약을 구하기 위해 숲을 가로질러 마을 밖으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을을 둘러싼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빌리지’는 처음부터 현재의 미국인들이 처한 상황을 빗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숲 속 괴물은 미국인들이 스스로 강제한 심리적 적과 같은 존재일 것이고, 미국인들은 영화 속 마을 사람들처럼 바깥의 위협에 전전긍긍한 채 오직 안전만을 생각하며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으나 (괴물의) 실체를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며, 원로들은 마을을 걱정한다며 늘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지만 한번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지금의 미국사람들이 어쩌면 딱 그런 형국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결국 마을의 위기를 구하게 되는 두 젊은 연인이 한 사람은 거의 말을 않고 살아가는 과묵한 청년이고, 또 한 사람은 앞을 못 보는 맹인 여성이라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눈에 보이는 것,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이 모두 다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샤말란은 아마도 바깥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지금 미국의 현실을 보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귀신이나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 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곡된 사실에 의해 오도되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더 이상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 이번 영화 역시 결말에 가까이 갈수록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반전의 최고봉은 역시 ‘식스 센스’였다. 작품을 만들면 만들수록 그의 반전은 다소 약효가 떨어지는 감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의 반전은 가장 인간적이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반전이 좀 약하다고 해서 그게 뭐 대수인가. 보고 나서 남는 것이 있는 영화가 그래도 좋은 법이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가족과 세상의 평화를 걱정해야 할 추석 시즌인 것이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