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방송委 자리 나눠먹기

  • 입력 2003년 4월 2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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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25일 여야 합의로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한 달 가까이 끌어온 방송법 개정 논란이 일단 수습됐다.

그러나 문광위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여야간 ‘담합’이라는 비판도 있고 ‘창조적 중재’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숫자상으로 여야간 균형을 잡은 것이 그렇다는 얘기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의 방송위원 추천 몫이 2명에서 3명으로 늘어 정부 여당과 야당 간의 추천 몫 비율이 현 5 대 2에서 5 대 3으로 바뀌었다. 또 한나라당은 그동안 추천 몫이 없던 상임위원 2명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개정안의 ‘산술적 균형’을 한 꺼풀 들춰보면 방송위원회, 나아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99년 출범한 방송위는 방송정책 결정을 방송전문가에게 맡기기 위해 9인 합의체로 운영토록 한 민간 조직이다.

하지만 이 중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상임위원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나면서 정치권의 직접적인 입김을 받는 인사가 방송위원의 반수를 넘게 됐다. 게다가 여야는 이번 개정안 협상 과정에서 방송위원 추천 몫 조정에만 골몰했을 뿐,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에 걸맞은 민간 전문가를 어떻게 추천하고 충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한 방송위 관계자는 “상임위원들이 자신을 추천한 정당이나 정부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만 골몰할 경우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정책이 왔다 갔다 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이 제출했다가 폐기된 방송법 개정안을 보면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또다시 방송위의 구조가 변경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방송위 구성에 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대선 후 갑자기 대통령 추천 몫을 3명에서 1명으로 줄여야한다며 개정안을 냈다.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이 상임위원을 한 사람도 추천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이긴 하지만 한나라당이 방송위원 수까지 바꾸려 한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문광위에서 “(방송위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 정략적인 것도 있다”고 시인했다.

한 방송학자는 “정치권이 자기 멋대로 방송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방송위의 조직까지 맘대로 바꿔버리는 판에 무슨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논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각 당은 방송위원 추천 몫 늘리기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방송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나 정당의 입김을 가능한 한 배제해야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승헌 정치부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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