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이원종 “오라는 곳 많아 인기 실감”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8시 17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만들어진 배우의 이미지는 과장된 경우가 많다. 기자들은 배우에게 씌워진 그런 이미지를 벗기고 현실의 그를 만나고자 하고, 배우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잭 니콜슨 같은 이는 자신의 신비한 이미지가 깨질까봐 인터뷰나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다.

배우 이원종(37)에게는 ‘구마적’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하게 덮여 있다. 그는 인기리에 방영중인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어릴 적 영웅이었던 종로 ‘오야붕’ 구마적 역을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TV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그 이미지를 벗긴 배우 이원종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11월13일 그를 만나러 서울 강남 도산공원 근처의 한 카페로 가면서 든 생각이다.

놀랍게도 실제의 이원종에게선 구마적의 이미지가 거의 풍기지 않았다. 100kg의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섬세하고 속 깊은 구석이 많은 것도 특이했다. 그는 대충 빗어 넘긴, 노란 염색 머리에 8년 전 아내에게서 결혼선물로 받은 낡은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나타났다. 코트 깃 안쪽은 해어져서 새로 박음질을 할 정도로 낡았지만 그는 그 옷으로 드라마 밖에서 마치 구마적인 양 남자다운 박력을 드러냈다. 구마적이 나타났다고 사람들이 수군대거나 알은체를 하면 그는 일일이 “안녕하세요”라며 선량하게 인사했다.

“배우가 어떤 인물을 소화한다는 것은 직·간접적으로 그 인물의 과거를 경험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 가슴으로 인물을 느껴봐야 그 눈빛이나 행동을 그럴듯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구마적을 소화하기 위해 자료도 보고 특별한 연기 연습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최고 주먹 ‘구마적’ 완벽한 소화

이원종은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배역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실감나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시청자들은 김두한이 구마적과 대적해 이긴다는 내용을 뻔히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의 대결을 가장 흥미롭게 보았다. 10월 중순 이들의 대결을 방영한 당시 시청률은 51.5%를 기록할 정도였다. 이는 그만큼 구마적이 당대 최고의 주먹이었고, 구마적의 연기 또한 좋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야인시대’가 폭력을 미화하고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난이 높다. 이에 대해 이원종은 “정당한 폭력은 있을 수 있다. 정당하지 않은 폭력이 문제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한 ‘야인시대’에서 그리는 당시 깡패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몸으로 상대와 겨뤘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 논리가 어린이들에게도 적용된다면?

“방송국측에서는 TV 화면 상단에 연령제한 표시를 하는 등 최소한의 경고 표시를 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계속 ‘야인시대’를 봅니다. 이건 결국 부모들이 다스려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구마적 역을 계기로 그의 주가가 한껏 치솟기도 했지만 올 들어 유난히 그는 여러 곳에 얼굴을 내밀었다. 요즘 ‘대망’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고, CF도 2개나 했다. 주연으로 출연한 코미디 영화 ‘유아독존’도 최근 개봉됐다. 올 들어 출연한 영화만 ‘남자 태어나다’ ‘라이터를 켜라’ 등 5편에 이르며 11월 말부터는 새 영화 ‘1과 2분의 1’ 촬영에 들어간다. 생계를 위해 젓갈장사를 하고, 1년 연봉 80만원의 연극단원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충남 부여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책가방도 없이 보따리에 책을 싸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고무신 신고 졸업식에 갔다는 그의 어릴 적 상황과는 너무도 대비된다.

1986년 3수 끝에 경기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 학과 공부보다는 연극에 미쳐 지냈다. 회원들과 함께 탈춤 등을 배우며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였다. 군 입대 후 보초를 설 때도 그는 혼자서 대사를 외우며 연극무대를 그리워했고, 복학한 뒤 다른 학교 연극영화과 등을 찾아다니며 몰래 강의를 듣는 등 연극을 직업으로 삼기 위한 밑바탕을 만들어갔다.

그러다 3학년이었던 91년 겨울 그는 극단 미추에 입단, 이듬해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오장군의 발톱’에 주연으로 발탁됐다. 동화적 인물인 오장군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을 다루고 있는 이 연극에서 그는 오장군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연습할 때는 연기가 잘 되지 않아 벽에 머리도 찧어보고 좌절도 하면서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연기에 몰입해본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성 있고 중후한 연기 도전하고파”

지금도 그는 배우로서 진지한 자세를 잃거나 게을러질 때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94년 결혼 뒤 그야말로 아이 우유 값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때, 보험회사에 취직해 겨우 3개월 버티고 그만뒀을 때, 경기도립극단에서 월급 받으며 배우가 아닌 공무원이 돼가는 자신을 느꼈을 때 그는 ‘오장군’을 떠올리며 자신의 처지를 돌아봤다.

이원종은 같은 극단의 단원인 다섯 살 많은 선배 김영화씨와 결혼해 여덟 살, 두 살 된 딸을 두고 있다.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할까봐 아내가 연상인 것을 알리지 않았다가 얼마 전 방송에서 밝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의 판소리 스승이었던 아내는 요즘 KBS ‘흥겨운 우리가락’, 국악방송 ‘우면골 상사디야’ 등을 진행하고 있다.

연극배우로서 받은 혹독한 훈련 덕분에 그는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요즘 그는 유독 영화에 관심이 많다. 자신이 연극에 몰입해 있을 때는 영화나 TV를 기웃거리는 이들을 손가락질했는데 막상 자신이 이곳으로 진출해보니 나름대로 특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그러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비쳐지고 있음을 우려해선지 이원종은 “마흔이 넘으면 ‘노틀담의 꼽추’에서 꼽추 역을 맡은 앤서니 퀸처럼, ‘쉘 위 댄스’에서 멋쟁이 춤꾼으로 나왔던 야쿠쇼 고지처럼 중후한 연기에도 도전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현상 주간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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