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아줌마들에 배신당한 '아줌마'

  • 입력 2000년 10월 15일 18시 57분


<<왜 '아줌마'들이 '아줌마'에 등을 돌리는 걸까? 30대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MBC의 월화드라마 '아줌마'가 정작 30대 여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대신 같은 시간 10대를 겨냥한 KBS2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에 30대 기혼여성이 몰리고 있다.>>

▽‘아줌마’에 대한 아줌마들의 ‘배신’〓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KBS측은 ‘가을 동화’와 같은 날 방영을 시작한 50부작 ‘아줌마’의 시놉시스를 보고 내심 “졌다”고 판단했을 만큼 방송가에서는 ‘아줌마’의 우세를 점쳤었다. ‘가을 동화’의 윤석호PD조차도 “어차피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아줌마들이고 우리의 주 타겟은 10대”라며 “시청률을 크게 의식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정도.

실제로 ‘아줌마’는 시사회에서 중견탤런트(원미경 심혜진 견미리)의 농익은 연기와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결과는 정반대. 최근 가구평균시청률을 보면 ‘가을 동화’가 31.6%, ‘아줌마’가 15.0%였다. 드라마 시청률을 좌우하는 30대 여성의 경우만 살펴보면 ‘가을동화’(21.8%)가 ‘아줌마’ (11.9%)의 거의 2배였다(TNS미디어코리아 조사, 전국 1000가구 대상). 이들은 첫회에는 ‘아줌마’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가 2회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해 4회에는 완전히 ‘배신’했다. MBC는 급기야 PD를 교체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이에따라 23일부터 장두익PD 대신 안판석PD가 연출을 맡는다.

▽드라마 아줌마 vs 진짜 아줌마〓주인공인 오삼숙은 잘난 남편과 시부모에게 기죽어 살면서도 교수 ‘사모님’의 꿈에 부풀어 있는 고졸의 주부. 드라마 ‘아줌마’의 주부 모니터이자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용숙씨는 “모니터 의견 중에는 이 드라마가 현실에 맞지 않고 아줌마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MBC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진짜 아줌마’들의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삼숙은 자녀문제나, 교육, 환경에는 도무지 무관심하고 오로지 남편 옷에만 관심이 있다.”

“이 시대 아줌마의 고민은 어려운 시집살이도 아니고, 등 돌리고 자는 남편도 아니다. 어떡하면 내 자식 잘 키우냐다. 요즘 엄마들은 애들 숙제해 주랴, 애 학교 가서 청소하랴, 할 일이 정말 많은데 드라마에서는 마냥 편해 보인다.”

“아줌마를 모두 무식하고 푼수같고, 무능력한 사람 취급해 자존심이 상한다.”

“엄마나 아내, 며느리 이전에 ‘여자’로서의 얘기가 너무 없다.”

한 주부가 올린 결정타.

“이 드라마에 ‘아줌마’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쓰기가 너무 아깝다.”

▽현실 vs 환상〓진짜 아줌마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일상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가을동화’는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 우연히 밝혀지는 진실, 한 때 남매였던 두 남녀간의 슬픈 사랑, 가난한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재벌 아들 등 ‘각종 흥행 요소’로 진하게 양념한 드라마다. 보기에 따라 ‘비현실적’이다.

▽1980년대 ‘아줌마’ vs 2000년대 ‘아줌마’〓한 시청자는 MBC홈페이지에 ‘80년대 드라마같다’는 소감을 올렸다. 실제로 ‘아줌마’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청자층은 80년대 30대를 보낸 50대 이상의 여성이다(15.2%). 그러나 80년대의 30대와 2000년의 30대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의 30대는 예전의 20대에 가까울 만큼 감각과 정서가 젊다는 것. ‘아줌마’의 한 주부모니터도 “솔직히 서른을 넘긴 아줌마도 현실만 아줌마지 마음은 10∼20대가 아닐까”라는 의견을 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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