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운동권' 스크럼짜고 충무로 첫발

  • 입력 1999년 11월 4일 19시 19분


어머니의 시각으로 학생운동을 다룬 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90년)로 널리 알려진 대학가 운동권 출신 영화집단 ‘청년필름’이 영화 ‘해피 엔드’로 충무로에 진출했다.

▼'실직자와 아내' 소재

12월초 개봉 예정인 이 작품은 한 실직자(최민식 분), 다른 남자(주진모)와의 불륜에 빠진 그의 아내 보라(전도연)가 벌이는 욕망과 갈등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들의 ‘충무로 나들이’가 화제다. 김광수(‘청년필름’대표) 정지우(감독) 신창길(제작부장) 이선미(제작실장) 김용균(제작부원) 곽신애(기획·홍보) 심현우(제작부원) 등 7명은 이선미(29)를 빼면 전형적인 ‘386세대’.

‘해피 엔드’는 이들의 젊은 아이디어와, 돈과 배급능력을 가진 대기업(제일제당), 중견영화사인 명필름이 결합해 만든 작품. 청년필름은 명필름의 제작과 마케팅에 참여하고 있다. ‘어머니…’를 연출한 이상인 감독과 ‘장산곶매’의 이은 감독 등 운동권 출신 감독들이 개별적으로 충무로에 데뷔한 것과 달리 집단적으로 진출한 첫 사례다.

▼제도권 진입 시험대▼

김광수대표는 “자본은 없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는 독립영화 그룹들의 제도권 진입을 가늠하는 시험대”라면서 “마무리 편집작업 중인 작품을 개봉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생강’ ‘사로(斜路)’ 등의 작품으로 단편영화계의 스타였던 정지우 감독은 “단편 소설만 쓰다 장편 대하소설을 집필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청년필름의 ‘모태’격으로 90년 6월 서울대 한양대 등 4개 대학 14명의 학생들이 만든 ‘영화제작소 청년’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머니∼’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상영돼 영화법 위반으로 이상인 감독이 구속되기도 했다.

▼"변화의 계기 됐으면"▼

이들은 93년 영화를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여기는 대신 ‘영화를 통한 사회참여’로 시각을 바꿨다. 제작비를 벌기 위해 멤버들은 정당의 홍보용 비디오나 결혼식 비디오에 매달리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동’을 한 셈이죠. 특히 결혼식 비디오는 꽤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감은 끊이지 않았습니다(웃음). 영화가 수단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과 사람들에게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정지우 감독)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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