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참여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 24년만에 한국상륙

  • 입력 1998년 6월 12일 08시 29분


24년동안 장기상영되면서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추종자들을 거느려온 교주(敎主), 열광과 혐오 양 극단이 존재할 뿐 ‘괜찮은데’식의 미지근한 평가는 받아본 적이 없는 영화.

‘컬트영화의 원조’라 할 ‘록키 호러 픽쳐 쇼’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이 영화는 75년 미국 첫 개봉때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변두리 심야상영에 돌입하면서 주류(主流)문화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처음 이 영화를 애물단지로 여겼던 제작사 20세기 폭스는 지금까지 이 영화로 주 평균 10만달러를 벌고 있다.

현재 전세계 2백여곳에서 상영중인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보는’ 영화가 아니라 ‘참여하는’ 영화다. 관객들은 배우와 똑같은 옷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며 스크린과의 경계를 허문다. 극장, 나라마다 서로 다른 관객용 대본까지 나올 정도.

한국에서도 그같은 신화가 가능할까. 벌써 조짐이 심상치 않다. 개봉전부터 알음알음 이 영화를 구해 본 매니아 1백여명으로 구성된 PC통신 동호회 ‘더블 픽처스’회원들은 주말 심야상영 때마다 난장을 벌일 ‘쇼단’을 자처하고 나섰다.

영화와 쇼단의 공연이 어우러지는 상영방식은 국내에서 전례없었던 일이다. 영화상영과 공연이 동시에 진행되는 외국과 달리 관객들의 낯설음을 고려해 우선 영화상영후 공연부터 시작할 예정.

공연에 참여할 20여명의 이력은 다양하다. 테크노음악 연주자, 웹 디자이너, 대학원생, 강사, 회사원….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회원 가운데에는 직업군인도 있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쇼단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이 영화를 가만히 앉아서 보는 건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지난달 초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외국의 공연장면을 녹화한 비디오를 틀어놓고 연습을 시작했다. 노래와 춤이라고는 노래방과 록카페에서 밖에 해보지 않은 실력인데도 지난달 23일 시사회에서 데뷔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연출과 주인공(프랭크 박사)을 맡은 조원희씨(28·테크노음악 연주자)는 AFKN과 비디오로 이 영화를 20번 넘게 본 열성 팬. 미국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여러 번 들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여고괴담을 보면서도 ‘안돼’하고 소리지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욕구와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마음껏 풀어놓자는 거죠. 한국의 마당극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20일 영화개봉에 앞서 이들은 12일 밤12시 서울 동숭아트홀에서 열리는 심야시사회에서 두번째 공연을 갖는다. 마치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에 저항하는 반(反)문화 게릴라들의 출정식이라도 되는 양 언더그라운드 록밴드인 ‘허벅지 밴드’, ‘이발쑈 포르노씨 밴드’도 공연에 합세할 예정.

쉽고 경쾌한 록음악이 쉴새없이 흐르지만 성의 혼란과 기괴함으로 가득한 ‘록키 호러 픽쳐 쇼’. 가치관을 혼란시키는 문제아가 될까, 아니면 한국에서도 열광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될까. 새로운 실험은 시작됐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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