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팔 잃은 사고 딛고 장애사원 멘토로… 경력-열정 되살린 ‘리턴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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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리스타트 잡페어]
장애-경력-나이 넘어 연 ‘새 전성기’

김용철 씨(46)에게 취업이란 단어는 30년간 ‘그의 사전’에 없던 단어였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가 두 팔을 잃고 나서다. 꽤 오랜 기간 바깥출입을 포기하고 긴 세월 스스로를 집 안에 가뒀다.

마흔 살이 되던 해, 마냥 침잠할 수만은 없었다. 두 딸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일하고 싶다’는 용기를 어렵게 냈다. 2년간 이력서 넣은 곳은 약 100곳. 결과는 전부 탈락. 장애가 있단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없었다. 다시 포기하려는 마음이 커졌을 때, 쿠팡의 공고를 보고 ‘마지막이다’는 심정으로 원서를 냈다.

면접장에서 그는 컴퓨터로 분당 180자의 속도로 애국가를 입력해 보였고, 엑셀 자격증도 내밀었다. 운전도 할 줄 안다는 그를 면접관들은 다시 봤다. 결과는 비로소 합격. 계약직 2년을 거쳐 현재 정규직으로 전환된 그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워커(CouWorker·장애인 재택근무 사원의 별칭)’ 교육팀 강사로 일하고 있다.

30년 만에 ‘인생 리스타트’에 성공한 그는 쿠팡에서 후배 장애인 직원들에게 일을 알려주고 상담해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무직 시절 기껏해야 ‘네’ ‘아니요’만 말하던 단답형 인간이, 회사에서는 “손 하나가 없어서 일하는 게 두렵다”는 훈련생에게 “나는 두 팔이 없지만 회사 일 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응원하는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소속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게 좋다”며 “매일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일상이 있다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김 씨처럼 장애와 경력 단절, 연령 등 각종 장벽을 넘어서서 새 일자리로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쉬어 봤기에 누구보다도 일하는 기쁨을 확신하는 이들의 열정과 잠재력을 믿고 채용에 나서는 기업들도 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통해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

● “육아로 퇴사했다 복직, 다시 일해 행복”

경력단절과 연령, 장애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강조한다. 쿠팡 ‘쿠워커 교육팀’에서 일하는 김용철 씨. CJ프레시웨이 구내식당에서 배식과 홀
 서비스를 하는 김은혜 씨. 맥도날드 청담DT점 크루로 활동하는 백승찬 씨. 스타벅스 서울 뚝섬유원지역 부점장으로 복귀한 장미란 
씨. 양희성 기자 yohan@donga.com·각 사 제공
경력단절과 연령, 장애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강조한다. 쿠팡 ‘쿠워커 교육팀’에서 일하는 김용철 씨. CJ프레시웨이 구내식당에서 배식과 홀 서비스를 하는 김은혜 씨. 맥도날드 청담DT점 크루로 활동하는 백승찬 씨. 스타벅스 서울 뚝섬유원지역 부점장으로 복귀한 장미란 씨. 양희성 기자 yohan@donga.com·각 사 제공
장미란 씨(41)는 10년 전인 2013년 스타벅스 서울교대점장이었다. 부부 모두 지방 출신으로 당시 2세인 아들을 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아슬아슬하게 일과 육아를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부재에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에게 미안해 결국 퇴사했다. 여전히 회사 나가는 남편이 부럽기도 했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떨어지며 사람 만나길 꺼렸다. 살도 엄청 쪘다.

다시 일하고 싶던 찰나에 옛 직장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리턴맘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6개월간 15kg 이상 빼면서 마음도 더 단단하게 먹었다. 면접날 아이가 하필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보내고 면접장까지 같이 와야 했던 그는 2017년 재입사에 성공했다. 스타벅스 서울 뚝섬유원지역 부점장으로 하루 4시간씩 일하는 그는 “아들이 성인이 돼서 첫 아르바이트를 스타벅스에서 같이 해보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CJ프레시웨이 본사의 구내식당 담당으로 일하는 김은혜 씨(48)는 출퇴근길에 “난 괜찮아”라는 노래를 부르는 똑순이다. 올해만 종양 제거 수술을 3차례 받았지만 일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매일 위생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다. 게임회사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가 출산 후 퇴사하면서 겪은 경력 공백기 6년간 일하고 싶던 열망이 누구보다 컸기 때문이다. 오전 4시에 첫차를 타고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그는 노래를 부르며 기운을 낸다. 김 씨는 “동료들이 일을 열심히 하고 늘 친절하다며 ‘영웅 사원’으로 뽑아줬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 나이, 장애도 ‘인생 리스타트’ 막지 못해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백승찬 씨(67)는 현재 맥도날드 청담DT점의 입사 1년 1개월 차 ‘신입 크루(직원)’다. 청소와 그릇 설거지는 그의 몫. 65세에 은퇴한 뒤 ‘좀 쉬어 볼까’ 싶기도 했지만, 아내가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며 못 쉬게 했다. 앞서 맥도날드 직원으로 일하는 아내의 추천 덕에 크루 일을 시작했다. 그는 “나이 들면 자꾸 눕고, 앉고 싶은데 그런 게 없어져서 좋다”며 “건강 관리도 충실히 해서 맥도날드 최고령 크루 기록인 ‘92세 은퇴’를 깨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일자리로 다시 시작하려는 구직자들을 위해 다음 달 5일부터 6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23 리스타트 잡페어’를 개최한다.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금융사,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이 청년과 장애인, 신(新)중년, 경력보유 여성 등 구직자들에게 채용 정보를 제공한다. 엔데믹 시대 들어 채용 수요가 높아진 호텔, 관광, 외식업 기업들도 참여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송진호 기자jino@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두팔 잃은 사고#장애사원 멘토#경력#열정#리턴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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