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팩토리’ 세레나데 부르는 한국…일론 머스크의 선택은?[이건혁의 브레이크뉴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3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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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이 숨 가쁘게 변하고 있습니다. 잠시 브레이크를 밟은 채, 생각해볼만한 뉴스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공장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잠깐 달력을 4월로 넘겨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을 국빈 방문 중이던 4월 26일(현지 시간), 윤 대통령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합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머스크 CEO에게 “한국은 최고 수준의 제조 로봇과 고급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테슬라가 기가 팩토리를 운영함에 있어 최고의 효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코리아 포 더 넥스트 기가팩토리’라는 제목의 책자도 직접 전달하며 ‘러브콜’을 보냈죠. 정부가 공개한 머스크 CEO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한국은 기가 팩토리 투자지로서 매우 흥미롭고, 여전히 최우선 후보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 미국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접견했다(왼쪽 사진). 머스크 CEO는 윤 대통령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 열창 영상에 ‘들어봐(hear, hear!)’라고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일론 머스크 트위터 캡쳐>
이로부터 약 2주가 지난 이번 달 9일, 한국 기획재정부가 전기차 공장에 투자에 대해 혜택을 주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내용은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전기차 공장을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로 간주한다. 이 시설에 대한 투자금에 대해 세액 공제 혜택을 준다. 대기업·중견기업의 경우 15% 중소기업은 25% 공제율을 적용한다. 올해에 한해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더 준다.
그래도 복잡하니,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기차 공장에 투자하면 혜택을, 특히 예전보다 올해 더 많이 하면 추가로 더 주겠다”입니다.

과거에는 세액 공제율이 1%였습니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1조 원을 들여 전기차 공장을 지어도 공제 혜택을 겨우(!) 100억 원만 해줬다는 거죠. 자동차업계와 전문가들은 다른 국가, 특히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투자금액의 최대 30%를 공제해준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러다 전기차 공장 해외에 다 뺏긴다”며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이에 정부는 대기업이 전기차 공장에 1조 원 투자할 경우 세금 혜택을 1500억 원으로 늘려주고, 조건에 따라 더 해준다고 발표한 겁니다.

기다렸다는 듯 반응한 곳은 현대자동차그룹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울산공장 부지 내에 2조 원을 들여 올해 4분기(10~12월) 중 전기차 전용 공장을 착공하겠다고 했죠. 올해 1~12월에 투자된 금액은 모두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기아가 앞서 투자를 발표한 오토랜드 화성 역시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게 됐죠.

현대차그룹의 발표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대목입니다. 2조 원을 들여 울산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겠다는 것도 지난해부터 언급돼 왔고, 착공 시점만 물음표였죠.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공장을 지을 여력과 의지, 그리고 지어야만 하는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2030년까지 전기차 글로벌 판매 364만 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이 중 151만 대를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인데요. 지난해 현대차·기아 두 회사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약 37만 대인 점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로 공장을 늘리거나, 기존 생산 라인을 전기차 위주로 재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화상접견한 뒤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화상접견한 뒤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제 자동차업계의 눈은 테슬라를 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꺼낸 세액 공제 혜택 카드에 테슬라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지켜보자는 것이죠.
정부는 기가 팩토리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이 일론 머스크 CEO와 화상 면담을 하며 처음 기가 팩토리 투자를 요청했고, 4월 미국에서 직접 만나 재차 요청을 했습니다.
말뿐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국내에 투자되는 전기차 공장에 대한 세제 혜택도 확대했죠. 전기차 공장에 대한 세액 공제가 테슬라 유치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윤 대통령이 머스크 CEO를 두 차례나 만난 직후인 만큼 아무 관련성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테슬라의 경우 미국 기업이기 때문에 일단은 외국인투자 촉진법이나 조세특례제한법 등의 규정에 따라 외국 법인에 부여되는 혜택을 받게 됩니다. 국내 법인에 적용되는 전기차 공장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법이 규정하는 내국 법인으로 인정받고, 관련 심사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합니다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닌 상황입니다.

테슬라의 전기차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모델S, 모델3, 모델X, 모델Y. 소비자들은 네 차량을 묶어 ‘S3XY’라고 부른다. 테슬라 홈페이지 캡쳐.
소비자들의 관심은 테슬라 기가 팩토리가 한국에 들어오느냐 마느냐에 쏠려 있습니다. 약 1만 명 채용을 목표로 내걸었던 베를린 기가 팩토리처럼, 일단 가동을 시작하면 적잖은 규모의 일자리가 생길 겁니다. 여기 납품하는 업체들의 매출이 늘면서 소득도 증가하겠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장이 한국에 있는 만큼 계약 후 출고까지 대기하는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겠고, 테슬라의 가격 정책 때문에 가능성은 낮지만 배송비용 등이 줄어들면 가격 하락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네요. 무엇보다 전기차 혁신의 상징 테슬라까지 한국에 둥지를 틀게 되면 한국은 명실상부 글로벌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겁니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정부 안팎, 자동차업계, 그리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회의적인 시선이 다소 우세한 편입니다. 일단 경쟁 국가로 꼽히는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매력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등 이차전지 원료 생산지이며, 인도는 자동차 시장 세계 3위로 떠오른 거대 시장이죠. 테슬라가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재고 소진과 점유율 확대를 위해 마진을 낮춘 만큼, 공장 증설에 투자할 여력이 줄고 있다는 겁니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한국에 투자할 가능성은 낮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중국 상하이의 테슬라 생산 공장 ‘기가 팩토리 상하이’ 전경. 테슬라 홈페이지
이 때문에 테슬라가 기가 팩토리 건설이 아닌 다른 방식의 투자를 진행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11월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표명했다’고 전해진 만큼, 충전 시설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IRA로 인해 사용이 제한될 중국산 배터리를 대체할 다른 공급선을 한국에 마련할 수도 있고, 전기차 관련 연구개발(R&D) 시설 투자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기차 공장에 대한 세제 혜택이 단순히 기가 팩토리 유치만을 노렸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정부가 테슬라의 투자를 원하고는 있지만, 굳이 테슬라가 아니더라도 전기차 관련 생태계 육성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올해 중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 한국GM의 전기차 라인 증설 소식이 들려온다면, 이 역시 정부의 투자 유인책이 먹혀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대차그룹, 자동차 부품사, 이차전지 업체, 반도체 업체 등 미래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의 투자가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술도 앞서 나가겠죠. 테슬라를 통해 국내 전기차 생태계가 커질 수도 있겠지만, 국내 전기차 생태계가 먼저 매력적으로 변하면서 기가 팩토리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라고 평가했습니다.

어찌됐건, 한국의 투자 환경이 개선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꼭 테슬라 기가 팩토리가 아니어도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국내 공장을 추가 증설하거나, 한국GM이나 르노코리아자동차가 국내 공장에 전기차 생산을 위한 투자를 결정하는 것 역시 반가운 일일 겁니다. 앞으로도 한국에 전기차 공장이 세워지기 위한 다양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지길 주문해봅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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