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리걸테크 회사 2000개 이상… 우린 혁신 싹부터 잘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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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기존 사업 갈등]존폐 위기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 김본환 대표 인터뷰
부담없는 가격에 법률서비스 제공… 변협 줄소송 ‘혐의 없음’ 처분에도
공정위 결정 지연되며 경영 타격, 최근 직원 절반 줄이고 구조조정
정부, 변협의 징계권 남용 감독해야… 사법부 제한적 판결문 공개도 문제

26일 서울 강남구 로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사 김본환 대표는 “국내 리걸테크 업체로는 최초로 2년 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됐지만 대한변호사협회와 갈등을 겪으면서 기업의 정상적 경영 활동이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6일 서울 강남구 로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사 김본환 대표는 “국내 리걸테크 업체로는 최초로 2년 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됐지만 대한변호사협회와 갈등을 겪으면서 기업의 정상적 경영 활동이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6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로앤컴퍼니 사무실에 이 회사 김본환 대표(41)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창업한 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이렇게 다리에 통증이 옵니다. 병원에서 신경성 통증이라네요.”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목발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워했다.

이 회사 경영도 현재 ‘목발 짚은’ 상태다. 의뢰인들이 변호사를 플랫폼에서 검색해 사건을 맡기는 ‘로톡’ 서비스를 2014년 내놓은 후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은 소속 변호사들의 로톡 이용을 막고 잇달아 소송을 걸었다. 그때마다 ‘혐의 없음’ 처분이 나왔기 때문에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990㎡(약 300평) 규모의 이 사무실로 확장 이전할 때만 해도 ‘지긋지긋한 법적 분쟁이 곧 끝나겠지’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과 과징금 부과 결정이 1년 8개월이나 걸리며 경영은 타격을 입었다.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그는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혁신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 “청년 변호사와 MZ 소비자를 연결하겠다”

김 대표는 17일 타운홀 미팅을 열어 3월 말까지 직원의 절반을 줄이고 남은 인력은 사무실을 떠나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직원들의 반응은….

“직원 90여 명은 그간의 일을 잘 알면서도 뜻밖의 발표에 비통해하는 분위기였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 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한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두 변호사단체는 공정위 발표에 불복하겠다는데….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사법 시스템과 국가기관의 결정을 무시하는 직역단체로 인해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100억 원이 넘는 매출 손해를 입었다. 85개월 연속 증가하며 2021년 3월 3996명이던 소속 변호사 수는 현재 절반 수준인 2000명으로 줄었다.”

―왜 로톡에서 나간 건가.

“85% 이상이 변협의 징계가 두려워서였다. 변협의 징계 효력이 발생하면 사내 변호사나 공공기관 취업이 안 된다.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 80%는 청년 변호사다. 변협은 회원들에 대해 자체 징계권을 갖는다. 변협이 징계권을 남용하면 청년 변호사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변협이 징계권을 남용한다면 정부가 막을 수 있나.

“변호사법상 법무부 장관은 변협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다. 정부는 변협에 징계권을 위임한 만큼 그 권한을 선량하게 쓰는지 감독해 줬으면 한다.”

―변협은 왜 로톡을 문제 삼나.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 변호사들이 플랫폼과 자본에 종속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실상은 법률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표는 연세대 법학과와 경영학과, 같은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왔다. 대학을 다니던 2003년부터 두 차례 창업 후 2012년 로앤컴퍼니를 세운 연쇄 창업가다. ‘왜 법률 서비스의 문턱은 높을까’를 고민한 끝에 15분 전화 상담에 2만 원, 30분 방문 상담 7만 원 등 청년 변호사와 MZ세대를 잇는 로톡을 내놓았다. 로톡의 이용자 3명 중 2명은 MZ세대다. 법률 상담이 막막했던 이들이 부담 없이 전문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 “혁신의 싹을 자르니 한국에는 리걸테크 유니콘이 없다”

김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합법적인 서비스를 내놓는 게 목표였다. 변호사법 34조(동업 금지)와 109조(비변호사의 법률사무 금지)를 인쇄해 나눠주고 전 직원에게 외우라고 했다. 그래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팩트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변호사법상 특정 의뢰인의 사건을 특정 변호사에게 소개하는 알선의 대가로 금품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광고료 명목으로 변호사로부터 받는 월정액을 수익 모델로 삼았다. 지난해 1월에는 인공지능(AI)을 적용한 판례 무료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를 내놓아 1년 만에 회원 1만6400명을 확보했다. 하지만 경영 악화로 서비스 개발과 투자가 힘에 부치는 상황이 됐다.

―일본 벤고시닷컴은 챗GPT를 활용한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곧 내놓겠다고 한다.

“벤고시닷컴은 100만 건이 넘는 법률 상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의 리걸테크(법률과 정보기술의 결합)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로앤컴퍼니는 88만 건을 갖고 있다. 한국 법원이 더 많은 판결문을 공개한다면 국내 리걸테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사법부의 제한적인 판결문 공개가 국내 리걸테크 발전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전체 재판의 3분의 1 정도만 판결문이 공개되는 데다 개인정보 유출 방지 목적의 비실명화 작업으로 인해 암호문 같은 판결이 많다는 것이다.

―국내 리걸테크의 현주소는….


“한국에서는 법률상 챗GPT를 통해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변호사의 비즈니스를 돕는 용도로만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는 리걸테크 회사가 2000개가 넘는다. 법률 계약서도 AI가 척척 써준다. 해외에 가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 왜 아직도 리걸테크 유니콘이 안 나오는지 다들 의아해한다.”

―챗GPT 시대를 어떻게 맞아야 하나.

“변협은 로톡에 대해 ‘선비가 지배하는 시장에 자본을 든 상인이 뛰어드는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변협은 챗GPT도 막아야 한다. 기술을 원천적으로 막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어떻게 다룰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예 혁신의 싹부터 자르려 한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데 앞으로 계획은….

“2012년 창업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IT 프렌들리’하지 않은 변호사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무조건 10년은 버틴다는 각오를 했다. 로스쿨을 나온 청년 변호사가 자본 없이 로톡에서 시작해 로펌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이번 공정위 결정에 다른 스타트업들도 힘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소비자 편익에 서서 도전하는 청년들을 응원하겠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미국#리걸테크#2000개 이상#스타트업#로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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