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대표가 지난해 8월30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엠버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민영화 20주년 기념식’에서 ‘더 나은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가는 디지코 KT’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KT 제공) 2022.8.30/뉴스1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 도전이 10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정부와 여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황제 연임 우려에 공개 오디션을 자청한 지 15일 만이다. 구 대표는 세 차례 차기 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결국 후보 사퇴를 결정했다. 이를 놓고 KT 내외부에서는 주인 없는 기업을 놓고 KT 외풍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구 대표는 23일 KT 이사회에 이 같은 의사를 밝혔고, 이사회는 구 대표 결정을 받아들여 차기 대표이사 사내 후보자군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 세 차례 경선 도전했지만 좌절된 연임
앞서 구 대표는 지난해 11월8일 연임 의사를 밝히면서 ‘연임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구 대표는 “디지코(DIGICO 디지털플랫폼기업) 전략 추진을 통해 KT에 많은 변화를 갖고 왔다”며 “과연 이런 변화가 구조적이고 지속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임 의사 표명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KT 이사회는 지난해 12월16일(연임 우선심사 적격 판정)과 같은 달 28일(내외부 후보 복수 경선) 두 차례 구 대표를 최종 차기 대표 후보로 선정했다. 구 대표는 3월 주주총회에서 선임 절차만 남겨두고 있었다.
뉴스1상황이 달라진 건 정부와 여권이 나서면서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셀프 연임·황제 연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해왔고, 이를 여권이 거든 데 이어 윤석열 정부 차원에서 직접 소유분산기업의 지배 구조 투명화를 강조하자 KT는 지난 9일 공개 경쟁 방식으로 차기 대표이사 선임을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 대표는 재차 공개 경쟁 의사를 나타냈다. 그리고 KT는 지난 20일 차기 대표 공모 서류 접수를 마감하며 외부 인사 18명, 사내 후보 1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구 대표를 포함한 총 34명의 후보가 KT 미래 비전을 놓고 겨룰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구 대표는 스스로 연임을 포기했다.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본인이 연임되더라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 디지코 성과도 넘어서지 못한 KT 연임 도전 잔혹사
구 대표는 ‘탈통신’, 디지코 성과를 앞세워 본인의 연임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첫 연임 도전 선언은 지난해 3분기 호실적을 기록한 날, 공개 경쟁 발표는 처음으로 25조원이 넘는 연간 매출을 기록한 날 이뤄졌다.
하지만 치솟던 주가는 CEO 연임 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정체됐다. 증권가도 즉각 반응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젠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정부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 3년간 실적 개선 및 주가 상승을 동시에 이룩한 CEO라고 해도 규제 산업이라는 특성 감안 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안타증권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 지속이다. 향후 3년 계획 유지 불확실성, 인사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 등에 노출된 것”이라며 “양호한 실적, 공격적 주주환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KT 주가가 정체된 가장 핵심 원인이다”고 짚었다.
뉴스1KT는 민영화 20주년을 맞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렸고, 이는 차기 CEO 선임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해왔다. 이 때문에 KT 민영화 이후 현재까지 연임 후 임기를 마친 건 전임 황창규 회장이 유일하다.
구 대표는 2020년 3월 취임 당시 “KT 그룹을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비전문가 선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커졌다. 집권 여당 출신 인사들이 지원한 탓이다. 이번 경선이 투명성 요구를 가장한 외풍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KT새노조는 구 대표 후보 사퇴 발표 직후 “이사회가 구사장 사퇴를 계기로 자정의지와 함께 정치권 낙하산에 결연히 맞설 용기를 가져줄 것을 호소한다”며 성명을 냈다.
한 KT 직원은 “결국 또 KT가 정권의 전리품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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