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파괴-비혼지원금… 기업들 MZ직원 맞춰 ‘변신 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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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가 바라본 기업, 바라는 기업]
〈하〉 MZ 포용 ‘다 걸기’ 나선 기업들
최고경영진도 영문 이니셜 호칭… CEO와 타운홀 미팅 문화도 확산
난임 휴직 등 제도 변화 이끌어… 한국식 기업문화 개선 원동력돼야

최근 삼성전자 사내 게시판에는 ‘어디일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사무실 출입문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출입문에는 분홍색 토끼 캐릭터 얼굴에 ‘YH’라고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게시판 글 아래에는 ‘정답: 글로벌마케팅실 이영희 사장(YH)의 집무실입니다’라고 적혔다.

이달 1일 임원들까지 수평 호칭 제도를 확대한 삼성전자가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사내에 공유한 것이다. 한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회의 시작 전 다들 닉네임부터 소개하는 등 새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MZ세대 맞춘 수평적 조직문화

조직문화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성과 평가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한국 기업의 지표를 바꾸고 있다. 동아일보가 서울대 이경묵 교수 팀과 20∼39세 전국 남녀 515명을 설문한 결과, 해외 기업들에 비해 한국 기업들이 갖는 최대 단점으로 ‘수평적 조직문화와 거리가 멀다’(21.0%)가 꼽혔다.


기업들은 미래 중추 구성원인 MZ세대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변신 중이다. 최고경영진을 비롯한 직장 내 호칭 파괴도 같은 맥락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JH’,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JP’,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영수님’으로 불린다. 1990, 2000년대 창업한 카카오, 네이버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도입했던 영어 이름이나 ‘○○님’의 호칭이 20여 년 만에 주요 대기업들에서 자리 잡은 것이다.

회사의 성과와 미래 방향성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서 직원들과 즉각 공유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타운홀 문화도 확대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업무 현장에서 타운홀 형식으로 신년회를 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장재훈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등 최고경영진이 직원들과 함께 새해를 열었다. 삼성전자의 한 부회장도 이달 직원 1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원테이블’ 미팅을 비롯해 비정기 타운홀을 꾸준히 열고 있다.

MZ세대와의 직접 소통 확대는 회사 내 인사 제도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업계 최초로 지난해 말 ‘비혼지원금’ 제도를 신설한 LG유플러스나 창사 이래 처음으로 ‘4조 2교대’ 근무를 도입한 SK이노베이션 등이 그 사례다. 이 외에도 난임 휴직, 입양휴가제, 반려동물 지원, 완전 탄력근무 제도 등 그간 없었던 형태의 정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3년 차 직장인 최모 씨(28·여)는 “워라밸에 대한 요구는 흔히 특정 세대만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업 문화의 개선이 오히려 저출산, 수도권 인구 집중,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파워풀한 소비자층인 MZ를 잡아라”
이처럼 기업들이 안으로 ‘MZ 구성원 잡기’에 나섰다면, 밖으로는 ‘MZ 소비자와의 소통’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주력 소비층인 MZ세대 사원들로 구성된 보드(위원회)를 꾸려 제품 및 서비스 개선에 참여시킨다. 식음료·유통·패션업계는 신제품 개발 단계부터 MZ 신입사원이 주도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기도 한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와 ‘가치 소비’, ‘플렉스(flex·재력 과시)’, ‘오픈런’(개장과 동시에 입장) 등 다양한 신조어들도 MZ세대가 만들어낸 소비문화를 반영한다.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변신은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단편적인 보여주기를 넘어 뿌리 깊은 한국식 기업 문화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뒷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이런 변화들이 나왔다가도 경제위기가 닥치거나 제반 상황이 악화될 경우 원점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았다. 호칭 변화 등을 시작으로 해 진정한 성과주의가 정착했는지, 직원의 의견이 진짜로 고위경영진에 들어가고 있는지 등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mz직원#바라는 기업#호칭 파괴#비혼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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