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공매도와의 전쟁’]풍부한 유동성에 자금력 무장
SNS 기반으로 조직력까지 갖춰… 韓개인투자자 이번주 8조 순매수
‘공매도 금지’ 靑청원 20만명 넘어… 헤지펀드 ‘게임스톱’ 공매도 맞서
개미들 공격에 주가 ‘롤러코스터’… 美의회 “청문회서 공매도 점검”
한국과 미국에서 공매도 이슈가 정치권으로 급격히 확산된 데는 영향력이 커진 ‘개미군단’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선 외국인의 주식 매도에 맞서 주가를 방어했다는 뜻에서 동학농민운동을 본떠 ‘동학개미’라고 불리고, 미국에선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를 주로 이용해 ‘로빈후드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다. 모래알 같았던 개미들이 최근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금융지식과 소셜미디어로 무장하고 세력화하면서 자본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세력화된 똑똑한 ‘개미군단’의 반격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번 주(25∼29일) 개인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8조 원 넘게 순매수했다. 이 기간 외국인과 기관은 5조3400억 원, 2조9100억 원어치를 팔았다. 29일 코스피 3,000 선이 붕괴된 하락장에서도 개인은 1조6970억 원을 샀다. 이 배경엔 2019년 610만 명에서 지난해 1000만 명 수준으로 급증한 동학개미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8일 “한국의 공매도 재개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자 동학개미들은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냈다. ‘영원한 공매도 금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12월 31일 게시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28일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 등의 주가 폭등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에서 뭉친 개인투자자 580만 명이 만들어냈다. 헤지펀드가 게임스톱을 공매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에 맞서 주식을 대거 사들인 것이다. 게임스톱에 이어 토론방에서 거론된 에너지기업 ‘뉴콘셉트에너지’는 28일(현지 시간) 959% 폭등했다.
외신들은 이들을 ‘레딧 아미’라고 부르며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레딧 아미 중 일부는 로빈후드를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섰다. 게임스톱 주가가 이상 급등하자 로빈후드 등이 기관들의 거래는 허용하면서 개인의 매수만 제한했고, 이 여파로 주가가 28일 44% 폭락해 개미들이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 “인위적인 주가 상승, 모두 패배자 될 것”
금융정보 분석업체 오텍스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 등은 개미들의 반격에 709억 달러(약 79조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게임스톱 공매도로 입은 손실만 10억3000만 달러에 이른다.
공매도 세력에 대한 개미들의 불만이 커지자 미 정치권도 행동에 나섰다. 민주당 맥신 워터스 하원의원은 “청문회에서 공매도 제도와 시장 변동성을 초래한 헤지펀드, 온라인 거래 플랫폼, 개인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시스템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공매도가 재개되면 ‘한국판 게임스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투자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자금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고 소셜미디어, 온라인 카페 등에서 조직적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며 “개미들의 세 결집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안희준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법 공매도를 근절하고 개인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개미들의 움직임이 분위기에 휩쓸린 측면이 크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내에서는 인위적으로 주가를 올리는 개인들도 기존 공매도 세력과 비슷하다고 보고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게임스톱 사례에서 보듯 지금은 개미들이 공매도 세력을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주가가 폭락하면 개미도 기관도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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