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 난민’ 내몰리는 신혼부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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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가점제 소외… 내집마련 힘들어져

결혼 3년 차에 네 살 아들을 키우는 직장인 김남준 씨(32)는 스스로를 ‘특공 난민’이라 부른다. 올해 들어 서울, 경기 과천시, 하남시, 안양시 평촌동 등 수도권에서 청약을 모집하는 단지가 있을 때마다 본보기집을 돌며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지원했지만 연거푸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제는 본보기집은 가보지도 않고 어떤 게 경쟁률이 가장 낮을지 눈치보고 쓴다”며 “대학생 시절 수강 신청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세 만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김 씨는 이날 특별공급을 모집한 ‘분당 더샵 파크리버’에도 청약을 넣었다.

청약가점제 시행으로 당첨 가점이 치솟으면서 신혼부부들이 특별공급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특별공급 경쟁률마저 일반 청약 못지않게 오르면서 아예 청약을 포기하거나 서울 도심 다세대주택을 택하는 신혼부부도 늘고 있다.

청약가점제는 당첨자를 뽑을 때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 무주택기간(최고 32점), 부양가족 수(최고 35점) 등에 따라 가산점(만점 84점)을 주는 제도다. 지난해 8·2부동산대책을 계기로 청약가점제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전용면적 85m² 이하일 경우에는 100%, 초과일 경우 50%를 가점제로 분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신혼부부는 일반분양에서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어졌다. 특히 최근 들어 수도권 청약 단지의 당첨자 가점이 급등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분양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파크자이’는 당첨자 평균 가점이 66.6점, 당첨 최저 가점이 59점에 달했다. ‘힐스테이트 범어’와 ‘미사역 파라곤’ 등 최근 분양한 다른 단지들도 최저 당첨자 가점이 50점을 넘겼다.

이 때문에 신혼부부가 기댈 건 특별공급뿐이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여의치 않게 됐다. 정부는 5월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민영아파트는 총 분양물량의 10%에서 20%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분양하는 국민주택은 15%에서 30%로 각각 2배로 늘렸다. 문제는 특별공급 자격 문턱도 확 낮췄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결혼한 지 5년이 넘지 않은 유자녀 신혼부부만 특별공급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지난달부터는 결혼한 지 7년 이내면 자녀가 있건 없건 특별공급에 지원할 수 있다. 접수 방법도 본보기집 현장 접수에서 인터넷 접수로 바꿨다.

이처럼 제도가 바뀐 이후 처음 청약이 진행된 서울 영등포구 ‘e편한세상 문래’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은 지난달 21 대 1을 찍었다. 특별공급 전체 평균 경쟁률(10.6 대 1)의 2배다. 이달 분양한 ‘고덕자이’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 역시 17.2 대 1까지 올랐다.

9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최윤석 씨(29)는 이런 상황 때문에 신혼집을 서울 강남구 양재동 다세대 건물에 마련했다. 최 씨는 “아파트는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고, 청약은 확률이 ‘0’에 가까워 깔끔하게 포기했다”고 했다.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김모 씨(32·여)는 지금껏 청약통장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김 씨는 “가점제 확대는 사실상 신혼부부에게 수도권 외곽에 나가 살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혼희망타운 7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발표했다. 신혼희망타운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주변 분양가의 50∼70% 선에서 분양받을 수 있는 아파트다. 하지만 서울 내 ‘알짜 입지’에 공급되는 물량이 적은 데다 전용면적이 40∼60m²로 비교적 작아 아쉽다는 평이 많다. 국토부는 조만간 신혼희망타운 규모를 10만 채로 늘리는 등 지원 확대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특공 난민#신혼부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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