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주식 알고도…주문 차단까지 37분, ‘매도금지’ 사내 공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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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부실 드러난 삼성증권 사태

사과문 내붙인 삼성증권 삼성증권 직원들이 잘못 배당된 거액의 자사주를 매도해 금융당국이 특별점검에 나섰다. 9일 오후 서울 시내 삼성증권 지점에는 구성훈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게시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사과문 내붙인 삼성증권 삼성증권 직원들이 잘못 배당된 거액의 자사주를 매도해 금융당국이 특별점검에 나섰다. 9일 오후 서울 시내 삼성증권 지점에는 구성훈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게시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6일 발생한 삼성증권 배당 사고는 직원의 단순한 입력 실수조차 걸러내지 못한 증권사의 허술한 내부 관리 시스템과 일부 직원들의 황당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허술한 금융감독 체계가 빚어낸 참사로 밝혀졌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 주식’ 28억 주가 발행돼 아무런 제재 없이 매매가 이뤄지는 허술한 주식 거래 시스템의 민낯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증권사의 위기 대응 매뉴얼을 점검해야 할 금융당국도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최악의 금융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고 인지 후 37분 후에야 ‘주문 정지’


삼성증권은 직원들이 주식을 팔기 전 거래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배당 담당 직원은 주식이 잘못 배당된 지 1분 만인 6일 오전 9시 31분에 오류 사실을 발견해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그 후 증권관리팀은 9시 39분 감사팀, 경영관리팀 등에 전화로 사고 사실을 알렸다. 9시 45분엔 각 사업본부에 전화로 “직원들에게 배당 주식을 매도하지 말라고 전파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이때까지 직원 계좌의 거래를 차단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업무개발팀이 9시 51분부터 5분 간격으로 3차례 개인용 PC에 알림창 형태로 ‘매도 금지’ 공지를 띄웠다. 공지는 “오류로 배당된 주식이니 매도하지 말라”는 짧은 글귀였다. 직원 계좌의 거래를 막은 것은 배당 실수를 인지한 지 37분이 지난 오전 10시 8분이었다.

삼성증권이 초동대응에 실패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이 직원 16명은 오전 9시 35분부터 10시 5분까지 주식을 매도했다. 삼성증권이 사고를 인지한 즉시 직원 계좌의 거래를 차단했다면 500만 주 이상이 시장에 풀려 주가가 급락하는 초유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은행 등 금융사들은 거래 실수가 발견됐을 때 추가 거래를 정지시키는 조치를 우선 취해야 한다”며 “이런 내부 매뉴얼을 갖추지 않았던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일확천금 꿈꾸다 100억 원 물어주게 된 직원들

회사의 ‘매도 금지’ 공지를 묵살하고 주식을 처분한 직원도 있었다. 첫 공지가 내려온 9시 45분 뒤에도 9명이, 개별 알림창 공지를 받은 9시 51분이 지나서도 6명이 이를 무시하고 주식을 팔아 거액을 손에 쥐었다.

특히 배당된 주식을 매도한 직원 16명 중에는 영업부서 팀장급과 투자자에게 기업과 시장 분석 내용을 제공하는 애널리스트도 포함돼 충격을 줬다. 이들은 회사 조사에서 “잘못 배당된 주식인 줄 모르고 매도했다”며 군색한 변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0여 명의 직원 대다수는 천문학적 금액의 주식이 들어온 계좌를 확인한 뒤 회사에 오류를 신고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서 이들과 대조를 이뤘다.

주식을 판 직원 16명은 9일 나머지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회사가 이미 매도된 주식을 결제하기 위해 지난주 기관에서 빌려온 241만 주를 되갚기 위해서다. 매매 차손으로 인한 손실 규모는 1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은 이 손실액만큼 이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다.

○ 감독 부실… 금융당국 ‘책임론’

이번 사고로 우리사주 배당 시스템의 문제점도 노출됐다. 증권사들이 우리사주 조합원에게 현금배당을 할 땐 일반 주주와 달리 한국예탁결제원을 거치지 않는다. 금감원은 “우리사주 배당소득은 비과세 혜택을 받기 때문에 조합원에게 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입고하게 돼 있다”며 “이 때문에 실제 발행되지 않은 주식이 착오로 배당될 수 있는 시스템상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 거래 시스템에도 구멍이 뚫렸다. 삼성증권의 총 발행주식수(8930만 주)의 30배가 넘는 28억 주가 배당됐는데도 아무런 경보 장치가 발동되지 않았다.

이 같은 배당 오류는 삼성증권뿐 아니라 다른 증권사들도 똑같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이런 황당한 상황을 방치한 금융당국에 대해서도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금감원은 뒤늦게 전 증권사와 한국거래소, 예결원 등 유관기관의 주식 거래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했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9일 기자브리핑에서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에 대해 “증권회사로서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철저한 사고 수습을 촉구하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피해자 구제 조치 요구에 따라 삼성증권은 이날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설치했다. 오후 4시까지 180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삼성증권은 6일 마감 당시 주가와 매도 시점 주가의 차이만큼의 손실액을 전액 보상할 계획이다.

박성민 min@donga.com·김성모 기자
#삼성증권#주식#매도#배당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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