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양날의 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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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이르면 7월 도입

국내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130조 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총 거수기’란 오명을 썼던 국민연금이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업에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국민연금이 정부 정책을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 “기업 의사 결정에 적극 관여”

27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할 방침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7월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국민연금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고 최종 보고서를 이날 공개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를 바탕으로 기금 운용 세부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보고서는 우선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 과정에서 주주 가치를 소홀히 하는 기업을 ‘중점관리 기업명단’에 포함시켜 이런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국민연금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주주 제안을 통해 임원 후보를 추천하고,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거나 참여하는 등 적극적 주주 활동을 주문하는 내용도 담겼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거스르기 힘든 세계적 추세라는 의견이 많다. 사회적 책임투자 컨설팅업체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270개 이상 기업에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기업이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일반 투자자처럼 쉽게 주식을 팔고 나올 수 없다”며 “주주권 행사 강화는 주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운용 전략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는 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반대 비율은 16.6%로 전년보다 2.4%포인트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지난주 삼성물산 정기 주총에서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등 4명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또 KB금융지주의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도 반대했다.

○ 재계 “대기업 견제용으로 악용 우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간섭할 여지가 커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재계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위협 요소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국민연금이 정부와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스튜어드십 코드도 운영 과정에서 정치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래 취지가 아니라 일부 진영이 추진하는 재벌 개혁이나 ‘대기업 때리기’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취지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정치권과 국민연금을 통해 대기업의 경영 간섭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며 “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min@donga.com·이은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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