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처별로 제각각이던 ‘신성장 산업’ 기준을 일원화한다. 이에 따라 올해 로봇, 저탄소 동력장치(친환경차), 스마트팜, 감각센서(생체인식) 등 45개 신성장 산업에 정책자금 85조 원이 풀린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의 자금난을 해갈시켜 줄 벤처펀드가 3조5000억 원 규모로 조성된다.
정부는 기술력이 있는 유망 기업들에는 자금을 풀어 육성하는 대신 부실기업에는 한층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기로 했다. ‘봐주기식’ 여신심사 관행에 메스를 들이대고 부실기업을 즉각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리도록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와 중소기업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업금융 관련 업무계획을 17일 발표했다.
금융위는 다음 달 신성장산업을 지원할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신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부처마다 서로 다른 ‘신성장산업’에 대한 기준을 일원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벤처회사가 특정 부처의 발표만 듣고 정책금융기관에 갔다가 “우리 기관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서곤 했던 혼란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는 올해 신성장 기준을 9개 테마(첨단제조·자동화 등), 45개 분야, 275개 품목(3차원 프린팅, 바이오시밀러 등)으로 정하고 총 85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각 부처들이 올해 업무보고에서 밝힌 신성장산업 기준은 신성장위원회가 구성되는 대로 즉각 검토해 새 기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신성장 기준이 산업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반기마다 업데이트 하기로 했다.
기술력이 있는 회사가 은행에서 더 낮은 금리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금융위는 2019년까지 신용평가와 기술평가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여신심사모형을 2019년까지 만들고 2020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기술력이 있는 회사는 신용평가 외에 기술평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데, 앞으로 이 절차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기청도 융자가 아닌 투자를 통한 창업을 확신시키기 위해 3조5000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주영섭 중기청장은 이날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중소중견기업군의 수출액 2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기존 ‘씨뿌리기식 지원’ 정책을 성과창출 중심의 ‘집중 육성’ 정책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중기청은 기술창업자 6500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주 청장은 “창업벤처의 기술 혁신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돼야 4차 산업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 중심 구조에서 중소기업 중심 구조로 바뀌는 패러다임 혁신을 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부실기업에 대한 잣대는 한층 깐깐해진다. 금융위는 은행들이 부실기업들을 솎아내 시장에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1∼6월)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의 신용위험평가 모델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마련한다. 이를 토대로 하반기에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매년 은행들은 거래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A∼D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C등급(워크아웃)이나 D등급(법정관리)을 줘야 할 기업들에도 기업과의 관계나 부실채권 증가를 우려해 B등급을 주는 온정적 심사를 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용위험평가 모델 평가 기준이 달라지면 C, D등급을 받아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들어가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 채권을 신속히 매각할 수 있는 방안도 내놨다. 금융위는 민간의 독립적 평가기관 1곳을 상반기 중 지정해 구조조정 채권의 공정가치(적정 매각 가격)를 결정하도록 했다. 은행이 이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고 채권을 계속 보유하려면 평가금액과 공정가치의 차액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구조조정 기업 인수에 나서는 ‘기업구조조정 펀드’도 만든다. 금융위는 정부 및 연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하위 구조조정 펀드들에 투자해주는 기업구조조정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이 펀드는 유암코와 같은 각종 구조조정 펀드를 자(子)펀드로 두고 구조조정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 국장은 “시장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자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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