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죽하면 경제단체장 신년사가 ‘본업에 충실’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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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이 어제 발표한 2017년 신년사에서 기업들에 대해 “특히 본연의 역할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도 신년사에서 “경제 주체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어떤 도전도 극복할 수 있고 경제 재도약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경제단체장이 한목소리로 ‘기업 본연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올 한 해 기업들이 정치 외풍에 시달리느라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웅변한다.

 허 회장과 박 회장은 국민에 대한 사과도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가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줄줄이 불려나와 질타당한 대기업 총수들을 대신한 사과일 것이다. 경제단체장들이 신년사에서 미래와 도전을 얘기해도 모자랄 판에 기업 본연의 역할을 강조하고 사과의 말을 앞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에 올라 출국 금지된 총수들도 있다. 해외사업을 챙기고 미래전략을 구상하기에도 벅찬데 발까지 묶였으니 속이 탈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20년이 더 지난 현재 많은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지만 정치는 여전히 4류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나 정치도 문제지만 기업도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정경유착에서 헤어나지 못한 점을 자성해야 한다.

 LG그룹과 KT가 그제 전경련에 탈퇴를 통보했고 삼성과 SK그룹은 탈퇴 절차를 밟고 있다. 4대 그룹 총수들이 청문회에서 밝힌 전경련 탈퇴 약속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 2월 물러나겠다고 밝힌 허 회장은 쇄신안을 마련하고 새 회장도 물색하겠다고 한다. 전경련이 해체되든 새롭게 변신하든 기업가정신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보호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없다. 내년은 대선의 해다. 정치도 변하고 기업도 변해 더 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느니, 정경유착이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탄식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건희#전국경제인연합회#허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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