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양복 업종은 지난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됐지만 대·중소기업이 상생협약을 맺어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김진업 대표의 작업 모습. 한국맞춤양복협회 제공
“이런 ‘울타리’마저 없었다면 몇 년 못 버티고 문을 닫아야 했을 겁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김진업 대표(67)는 2012년 맞춤 양복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고, 지난해 대기업과 상생협약을 맺으면서 골목상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이 적합업종 지정 이후 맞춤양복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백화점이나 대기업 매장을 이용했던 손님들이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단골들이 하나둘 은퇴하면서 양복점을 찾는 발길이 줄고 있긴 하지만 개성을 중시하는 20, 30대들이 맞춤양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은 최장 6년 동안 해당 시장 진입을 자제하고 해당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해야 한다. 이 기간이 끝나도 대·중소기업이 상생협약을 맺으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울타리는 유지된다. 12월 현재 74개 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고 26개 업종이 상생협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내년에는 골목상권을 지키는 울타리가 무더기로 사라질 수 있다. 적합업종 49개가 내년에 적용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적합업종, 상생협약으로 그동안 보호를 받아온 영세 업체들이 경쟁력을 단기간에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청, 동반위,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은 올해 9억6000만 원을 들여 20개 업종에 컨설팅과 공동브랜드 사업 추진 비용 등을 지원했다.
맞춤양복업계도 이런 지원을 받아 지난달 처음으로 맞춤양복 시장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받았다. 한광수 한국맞춤양복협회 사무국장은 “1500개 회원사와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맞춤양복의 수요와 적정 가격대 등을 진단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컨설팅을 바탕으로 패션 소품을 공동 브랜드로 만드는 사업부터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생협약 업종인 자동차 재제조부품(재활용 부품)업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10개 업체가 힘을 합쳐 공동 브랜드를 만들었다. 재제조 산업은 중고 부품을 분해, 세척, 검사, 보수, 조립 등의 과정을 거쳐 새 제품과 유사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이다. 상생협약을 맺은 현대글로비스 등 대기업은 재제조부품 분야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 재제조부품 유통업체인 그린카프라 박임호 대표(51)는 “품질기준과 가격관리 표준을 공동으로 마련하면서 고객 신뢰도도 올라갔다”고 말했다.
동반위는 내년 초에 나오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성과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적합업종제도 법제화 등의 타당성을 따져보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20일 열린 44차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내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기업에 제일기획 등 17개사를 추가해 185개사로 확정하고 동반성장지수 평가 체계를 실적 위주로 개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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