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박태준’ 사강 선원룽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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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선원룽 회장, 직원 100명 기업을 3만명 대기업으로 키워

장쑤사강이 작은 지방기업에서 세계 500대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직으로 들어가 최고경영자에 오른 ‘철강맨’ 선원룽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 출처 바이두
장쑤사강이 작은 지방기업에서 세계 500대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직으로 들어가 최고경영자에 오른 ‘철강맨’ 선원룽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 출처 바이두
1975년 회사 설립 당시 직원 100여 명에, 한 해 3000t가량의 철강 제품을 생산했던 사강(沙鋼)강철은 40년이 지난 2015년 철강 생산량 3400만여 t에 직원이 2만8000여 명인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철강업체 3위이고, 세계 500대 기업 중에서도 274위다.

비약적 성장 뒤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풀뿌리 기업가’로 꼽히는 선원룽(沈文榮·70) 회장이 있다.

그는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한 뒤 학업을 접었다. 다행히 사강강철의 전신인 면화가공 공장이 만든 ‘공부하면서 일하는 학교’, 즉 반공반학(半工半學) 과정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1975년 사강강철이 설립될 때 기술직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성실함과 열정, 헌신적인 자세 등이 경영진의 눈에 들어 입사 9년 만인 1984년 공장장으로 발탁됐다. 4년 뒤인 1988년에는 1인자인 사강의 당서기가 됐다. 사강강철을 소유했던 장자강(張家港) 시가 2004년 회사를 민영화한 뒤에는 선 회장이 약 30%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가 됐다. 그 후 국회의원 격인 전국인민대표도 맡았다.

중국의 철강업계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회사를 새로 세우거나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릴 때, 그리고 다시 구조조정으로 일부 회사를 매각해야 했을 때 중요한 결정은 모두 선 회장이 내렸다.

수년 전에는 사강이 보유한 해운회사의 지분 51%를 선뜻 국영 선박회사에 내주고 대신 그 선박회사에서 사용하는 철판을 모두 사강이 공급하도록 합의해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선 회장은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 때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집 안의 솥은 물론이고 온갖 쇠붙이를 모아 철을 만들던 시절을 생각하며 철강강국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선 회장은 올 3월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철강업계가 과잉 공급으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과잉 공급이란 시장경제가 발전한 결과다. 과잉 생산 과정을 거친 후 기술 수준이 높아진다. 철강도 수요가 공급보다 항상 많았다면 중국 철강회사들은 기술을 지금처럼 높이지 않고 안주했을 것이다.”

선 회장은 사강의 성장 비결에 대해 “살아남기 위한 기술혁신과 끊임없는 변신, 업그레이드”라고 말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다.

선 회장은 2003년 포항제철을 방문했을 때 ‘포항제철의 현재는 사강의 미래다’라는 글을 남겼다.

장자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사강#선원룽#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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