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휩쓴 韓 기업들…밀키스-레쓰비 시장 점유율 80% 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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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러시아 극동은 기업인들 사이에서 ‘얼음이 녹는 빙하’에 비유된다. 규제가 풀리면서 수많은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몰려가고 있지만, 한순간의 방심으로 크레바스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난 외국기업 임직원 대부분 창고에 쌓아둔 상품을 챙기거나 귀국 채비를 하고 있었다. 10월22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만난 독일인 톰 벤 데어 린데 씨는 “저유가와 루를화 평가절하에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까지 겹쳐 러시아 극동 시장도 외국 기업의 ‘무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롯데, 포스코, 현대상선 등 한국 기업들은 투자하며 수익을 늘리고 있어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10월 20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중심가 쇼핑몰을 찾았을 때 롯데칠성음료가 현지에 내놓은 탄산음료 밀키스와 캔커피 레쓰비를 사가는 러시아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초등학생 마리나 이바노비차는 “밀키스는 우유가 들어 있어 맛있다. 학교를 마치면 매일 사 마신다”고 말했다. 밀키스는 2014년 한 해 동안 러시아 시장에서 1320만 달러(약 147억원)어치가 팔렸다. 이곳의 밀키스는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11가지 맛을 낸다. 레쓰비도 러시아 국민 캔 커피로 자리 잡았다. 밀키스와 레쓰비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모두 80%가 넘는다.

롯데는 극동에서 소비자 친화적인 제품을 수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는 롯데호텔모스크바점 개설 이후 브랜드 확산 효과도 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호텔이 러시아에서 안착한 뒤 브랜드 인지도가 확산되면서 초코파이와 같은 제과 제품 수출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롯데는 극동과 모스크바를 거점으로 삼아 카자흐스탄의 1위 제과업체인 라하트를 인수하고, 우즈베키스탄의 수르길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남 북한과 러시아가 추진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합자 사업자로 참여하고 포스코는 장기적인 접근 전략이 뛰어난 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코는 러시아가 불황기를 맞고 있지만 상품 수출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장기 전략 투자의 일환으로 러시아 극동조선소에 선박용 후판을 팔아왔다. 이 조선소는 소련 시절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수상함과 잠수함을 수리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는 러시아의 전략 기업으로 지정돼 천 톤급 상선을 제조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선박 회사 재편에 따른 도크 건설 등으로 이 회사의 철강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포스코가 이 조선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지사를 두고 나진-하산 투자프로젝트를 계기로 러시아 고위층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석배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살아남은 기업들은 극동을 발판으로 삼아 유라시아 철도를 타고 수천 km 떨어진 옛 소련 위성 국가 곳곳에다 상품을 뿌릴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후광 효과를 얻으면 성공 확률을 더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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