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농식품부가 ‘農政 혹평 반성문’ 쓴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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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소비자경제부
박재명·소비자경제부
“국민들은 농촌 투자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한다.”

농업정책을 주관하는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들이 들으면 뜨끔할 만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돌직구’를 날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외부 기관의 컨설팅 내용 같지만 사실 농식품부 간부들과 산하기관 관계자 등 70여 명이 8월에 모여 토론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농식품부가 최근 발간한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란 책(294쪽)이 화제입니다. 정책 자료집이지만 8월 토론 내용을 요약해 국민들이 생각하는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공무원의 시각에서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몇 가지를 발췌해 보면 발언의 강도가 약하지 않습니다. 농업 부문에서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대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농업계로부터도 진단과 해법이 없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썼습니다. 농가 소득을 올리는 직불금 제도와 관련해선 “중소농가의 소득증대 효과가 제한적인 데다 그나마 재정 한계로 늘리지도 못했다”고 혹평했습니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다 보면 공무원들이 ‘공(功)’을 홍보하는 것보다 ‘과(過)’를 숨기는 데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는 수년 전 기안한 정책에 발목이 잡혀, 정부 교체 뒤 인사 때 ‘물먹는’ 선배들을 지켜본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농식품부는 왜 이례적인 자아 반성문을 내놨을까요.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의 책 머리말이 답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장관은 서문에 “이 책이 공직자들에게 각자 맡은 바 역할과 책임을 점검하고 분발하는 거울이자 채찍이 되길 바란다”고 썼습니다. ‘채찍’에 무게중심이 실린 발언입니다.

국내 농정 현실은 분명 녹록지 않습니다. 농가 인구는 10년 새 절반으로 줄고, 도시 근로자 대비 농가 소득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농업 분야 보조금을 빼돌리는 범죄도 줄지 않아 경찰청이 보조금 횡령을 근절해야 할 토착 범죄로 선포할 정도입니다. 농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국민의 신뢰까지 잃고 있는 상황에 처한 셈입니다. 비단 책을 내놓지 않더라도, 농정 당국자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시점은 이미 다가왔습니다.

박재명·소비자경제부 jmpark@donga.com
#경제 카페#농림축산식품부#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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