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가위손 포섭작전… 전국 점조직 구축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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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화장품업체 로레알의 한국진출 성공요인 분석

프랑스계 화장품 업체 로레알의 헤어케어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1997년. 당시 한국 헤어케어 시장에서는 독일계 기업 웰라가 강자로 군림했으며 몇몇 국내 기업과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로레알은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였다. 웰라가 지배하는 시장에 또 다른 글로벌 브랜드가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로레알은 한국에 진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웰라와 점유율 1위를 다투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후 거의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매출을 늘려 가고 있다. 특히 로레알이 국내에 선보인 헤어숍 중심의 영업 방식은 국내외 헤어케어 브랜드들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전략이 됐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로레알의 한국 시장 진출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 사는 이에게도, 파는 이에게도 낯선 방식 시도

로레알 브랜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기존 브랜드들이 이미 활용하고 있던 전통적인 방식의 소매 판매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등에 입점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로레알의 핵심 역량은 다른 곳에 있었다. 로레알은 유럽 지역에서 먼저 시장점유율을 높여 왔는데 이 과정에서 헤어디자이너를 통해 제품을 판매했다. 전국에 점조직처럼 퍼져 있는 헤어숍에 제품을 공급했고 헤어디자이너가 고객에게 판매를 권유했다. 디자이너가 직접 제품을 권유하기 때문에 전문성과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고 마트에서처럼 대체 가능한 다수 제품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구매 확률이 높았다. 이런 방식을 통해 유럽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로레알은 해외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에도 비슷한 방식을 적용했고 이제 막 진입한 한국 시장에서도 같은 전략을 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있었다. 로레알이 내세운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 시장에 낯선 형태라는 점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대형마트나 할인점이 아닌 헤어숍에서 디자이너의 조언을 받아 제품을 구입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디자이너들도 마치 영업사원처럼 특정 제품을 권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레알은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접근했다.

○ 교육을 통해 판매자를 내 편으로 만들다

헤어숍에서의 제품 판매가 매끄럽게 이뤄지려면 우선 디자이너들을 포섭해야 했다. 디자이너들은 스스로를 판매자로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괜히 서투른 영업을 했다가 단골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레알은 헤어디자이너들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대규모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디자이너들이 로레알 제품에 친숙해지려면 일단 써 보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매장 몇 곳을 골라 무료로 제품을 뿌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디자이너들이 실제 사용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자칫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었다. 로레알은 교육 과정에서 헤어디자이너들이 로레알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면 단골 고객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로레알은 한국 시장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주요 헤어숍을 중심으로 방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디자이너들이 어떤 교육을 원하는지 분석했다. 그리고 각 프로그램과 로레알의 주요 제품을 결합했다. 강사가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연해 보이고 수강생들이 따라 하도록 하되 새로 나온 로레알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식이다.

로레알에서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을 사용해 본 디자이너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제품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듣고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디자이너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로레알 아카데미를 통해 진행된 교육과정들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를 전문가로 인식하고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자기계발에 적극적인 신진 디자이너들은 로레알 교육을 통해 배움에 대한 만족을 얻었다. 로레알 아카데미를 거친 디자이너들이 헤어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로레알 제품은 더 많은 점포에서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될 수 있었다. 현재 로레알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매년 약 500개, 참여 교육생은 연간 1만 명에 달한다.

○ 장기적 상생 관계를 구축하다

로레알은 개인 디자이너뿐 아니라 헤어숍들과도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 구축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기획한 것이 카운슬러 제도다.

상당수 헤어숍이 미용기술만 가진 개인 자영업자에 의해 운영된다. 그렇다 보니 매장 운영에 대한 전문적인 경영지식에 목말라 하는 곳이 많다. 헤어숍 중에는 어떤 식으로 고객을 모으고 관리하면 좋을지, 광고를 어떻게 하고 영업을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궁금해하고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고 싶어 하는 곳이 적지 않다.

헤어 관리 기술이나 로레알 제품과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없었지만 로레알은 헤어숍들이 가진 경영적 측면의 고민 해결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매장 운영과 관련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카운슬러 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헤어숍이 밀집한 지역을 쪼개서 담당 구역을 정하고 주기적으로 헤어숍을 방문하며 상담해 줬다. 제품이나 교육 외에 재고 관리, 판매 점검, 프로모션 등 각 헤어숍이 가진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최신 트렌드가 궁금하다는 헤어숍에는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고, 손님이 줄어서 고민이라는 헤어숍에는 프로모션 방법을 함께 기획한 후 프로모션에 쓰일 로레알 제품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이런 협업을 통해 친밀도가 높아지고 공동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나면서 로레알 제품 매출에도 도움이 됐다. 궁극적으로는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많은 고객을 모으려고 하기보다 의사결정권을 가졌거나 영향력이 큰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관계 지향적 영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며 “로레알이 고객의 제품 구매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디자이너와의 관계를 강화한 것은 최종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로레알#가위손#헤어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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