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토해내는 연말정산… 소비위축 부메랑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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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더 내는 가구들 “지출 줄일수밖에”

주부 정모 씨(36)는 다음 달부터 남편의 용돈을 5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얼마 전 남편의 2013년 연말정산 결과를 확인해보니 세금을 50만 원 정도 더 ‘토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올려준 전셋값과 은행에서 빌린 대출이자, 보험료, 식비 등을 생각하면 당분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도 적자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정 씨는 “남편이 연말정산 후 세금을 더 내게 된 것은 결혼 4년 만에 올해가 처음”이라며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르는데 세금은 더 걷어가니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13월의 보너스’로 불리던 연말정산의 세금 환급 규모가 줄고 오히려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연말정산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소득에 대한 올해 초 연말정산으로 근로자들이 더 내야 하는 추가 납부세액은 2조 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두둑한 연말정산 환급금을 기대했다가 오히려 세금을 토해내야 하는 가구들이 ‘지출 줄이기’에 나서면서 연말정산이 소비에 찬물을 끼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일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청은 12일까지 지난해 근로소득에 대한 각 회사의 연말정산 신고를 받을 계획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회사들은 이달 중 연말정산 결과를 반영해 월급을 지급하게 된다.

이미 연말정산 결과를 확인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연말정산 결과에 대한 불만이 거세다. 환급액이 크게 줄거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직장인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연말정산으로 세금을 추가 납부해야 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정부가 2012년 9월 간이세액표를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 소비 늘리려 원천징수 줄인게 오히려 2, 3월 소비 발목 잡아 ▼

국세청은 개개인의 급여 수준이나 공제항목을 반영해 매달 정확한 금액의 세금을 징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이세액표를 활용해 급여 수준에 따라 일률적으로 세금을 원천징수한다. 이후 연말정산을 통해 세금을 확정해 원천징수한 금액이 더 많으면 돌려주고 적으면 더 받는다.

정부는 2012년 9월 소비 진작을 위해 원천징수액을 평균 10%가량 줄였다. 세금을 ‘미리 많이 걷고 연말정산 때 많이 돌려주는’ 방식에서 ‘적게 걷고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매달 월급에서 떼는 원천징수액이 줄어들면 그만큼 월급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겨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이에 따라 2012년 소득에 대한 지난해 초 연말정산 결과 정부가 직장인들에게 되돌려준 세금 환급금 규모는 4조3802억 원으로 전년(4조5836억 원)보다 2000억 원 이상 줄었다. 또 세금을 더 낸 직장인은 354만7690명으로 전년보다 61만2530명 늘었고, 추가납부 세액도 1조921억 원에서 1조4236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추가납부 세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신용카드 공제율이 20%에서 15%로 줄어드는 등 소득공제 항목이 일부 축소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증가율만큼 늘어난다고 해도 올해 연말정산 추가납부 세액은 1조8550억 원에 달하는 만큼 각종 소득공제 축소 효과를 감안하면 추가납부 세액이 2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당초 정부 설명과 달리 이 같은 연말정산 방식 변경이 오히려 소비 회복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2년 9월 정부가 간이세액표를 개정하면서 그해 1∼9월 미리 걷었던 원천징수액 가운데 1조5000억 원을 되돌려줬지만 2012년 4분기(10∼12월) 민간소비 증가율은 0.8%(전기 대비)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연말정산 환급금이 줄고 추가납부 세액이 늘면서 지난해 1분기 민간소비는 0.4% 감소했다.

유통업계는 올해 연초 소비 부진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설 연휴가 끼어 있는 매년 1분기에는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보통인데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소비가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의 경우 올해 들어 2월까지 두 달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연말정산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소비 여력이 큰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금 환급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연말정산 쇼크에 따른 소비 위축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염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매달 세금을 5만 원씩 적게 떼서 늘어나는 소비 진작 효과보다 연말정산에서 한 번에 50만 원을 한꺼번에 떼 가면서 나타나는 소비 위축 효과가 큰 것은 당연하다”며 “연말정산 충격이 소비 회복세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주머니에 들어왔던 돈이 한꺼번에 나간다는 점에서 납세자의 반발도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김범석 기자
#연말정산#소비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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