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주주권 강화案, 자본주의 시스템 뿌리째 흔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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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硏 세미나서 우려 목소리 봇물… 일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 비판도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 및 주주권의 적극적인 행사를 통해 투자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재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논란은 지난달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에서 시작됐다. 권고안은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해 반드시 의결권을 행사하고 감시대상 기업 목록을 만들어 관리하는 등 기업 지배구조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영향력 확대가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와 맞물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활용하자는 등 국민연금의 운용 관련 외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이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곽관훈 선문대 교수(경찰행정법학과)는 “일본의 경우 자금 운용을 외부에 위탁하고 의결권 행사도 외부기관이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확한 원칙 없이 사실상 정부의 입김대로 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본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10대 그룹 주요 계열사의 반기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국민연금의 지분이 9∼10%에 이르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7.43%를 확보해 최대주주이며 삼성물산(9.57%)과 삼성SDI(9.41%)의 주요 주주이다. SK하이닉스(9.41%), 대우인터내셔널(9.23%), 롯데칠성음료(9.09%), LG전자(9.0%) 등의 지분도 9% 이상이다. 최근 제일모직이 패션사업 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기로 한 결정도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입김이 작용했다.

▶본보 24일자 B3면 제일모직, 패션사업 에버랜드에 넘긴다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초 국민연금은 상장회사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게 될 경우 5일 이내 공시해야 하는 이른바 ‘10% 룰’ 적용을 받았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주식을 사들인 날의 다음 분기 첫째 달(1, 4, 7, 10월) 10일까지만 공시하면 돼 종전보다 자유롭게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가총액 대비 약 6%로 해외에 비해 큰 편”이라며 “국민연금이 주식 보유 비중을 확대할 경우 2020년경 시가총액 대비 16%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계는 반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그대로 둘 경우 최근 논란이 된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 선임 건처럼 기업 경영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4일 ‘국민연금 의결권·주주권 강화 방안의 문제점’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는 국민연금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발제자로 나선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학)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및 주주권 행사 강화는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며 “정치권 등의 입김이 커질수록 기업주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지나친 우려’라는 태도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이뤄지며 기업 경영권을 침해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국민연금공단#투자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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