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절전 압박’에 기업들 “공장 돌리지 말란 말이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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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의 협력업체가 부품보증서를 위조한 게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에 실패하고 원전 관리를 못한 책임을 산업계가 대신 지는 것 아닙니까?”

정부가 조만간 산업체에 강도 높은 절전을 요구하는 겨울철 전력수급 대책을 내놓기로 하자 전력을 많이 쓰는 대형 사업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의 근심이 깊어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7일 “왜 우리만 괴롭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강제 절약목표’ 받게 되는데…

올겨울 전력 사정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기름값이 고공 행진을 하면서 전기난방이 많아져 해마다 겨울철 전력수요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상청은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매서운 한파가 올 것으로 예보하고 있다. 여기에 설계수명이 다한 월성 원전 1호기가 20일 가동을 멈추고 ‘위조 부품’을 쓴 영광 5·6호기까지 장기 정지하기 때문이다.

위조 부품 사태 전 전력거래소가 예상한 내년 1월 예비전력은 239만 kW다. 단순 계산으로도 여기서 영광 원전 2기의 공급 능력을 빼면 예비전력은 40만 kW를 밑돌게 된다. 이는 전력수급 경보 ‘심각’에 해당하는 단계로, 전력당국은 급하지 않은 곳부터 전기를 차단하는 ‘계획 정전’을 실시하게 된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철강, 전자, 화학 등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업종을 중심으로 ‘강제 전력 감축’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에도 9·15 정전 사태 이후 6700개 대형 사업장에 전력 사용량을 2010년보다 10% 이상 줄이도록 요구했고, 전력 감축 할당량을 지키지 못하면 과태료도 부과했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산업용 전력은 강제 절약 목표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각 기업도 현장에서 쓸 마땅한 방책이 없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하는 기업들은 “수출 사정도 안 좋은데 이제 내부 생산요소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전기 소비량이 많은 기업들을 우선 단속하면 전기 절약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하지만 대다수 기업은 여름에 시작했던 에너지 절감대책을 아직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설비 돌리지 말라는 얘기냐” 불만

삼성전자 측은 “아직 정부가 동계 전력 수급대책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지만 적극 응할 계획”이라며 “직원들에게 내의 착용을 권장해 실내 난방온도를 낮추고 전기수요가 몰리지 않게 휴가도 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 관계자는 “생산 현장에 차질을 빚는 전력 수급대책은 곤란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포스코 측은 “현재 70∼80%에 이르는 자가(自家)발전 비율을 최대한 높이고 설비 수리 일정을 조절해 전력 사용을 최대한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혁신적으로 전기소비를 줄이는 설비를 한두 달 내에 도입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과태료를 내지 않으려면 이런 불황에 설비를 돌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블랙아웃(대규모 동시 정전)’은 피해야겠고 정부에서 전력 사용을 줄이라면 줄여야겠지만 불만이 많다”며 “정부와 달리 원래 기업 현장엔 낭비요인이 많지 않다는 걸 공무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쏘아붙였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절전#기름값#한파#전력거래소#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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