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대출 받은 청춘, 졸업후 소득 적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서울의 한 여대를 다니던 정모 씨(24)는 지난해 군소 언론사와 홍보대행사 4곳에 합격했지만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돈이 급하지 않으므로 마음에 안 드는 직장에 서둘러 들어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없다. ‘스펙’을 쌓기 위해 해외 자원봉사나 공모전에 공을 들였고 각종 학원비로 월 100만 원 이상을 썼다. 그 덕분에 토익은 두 차례 만점, 학점도 만점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대학교수라 집안 형편이 넉넉하기에 가능했다. 정 씨는 “사회생활의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부모님 말씀에 연봉 4000만 원 이상인 정규직만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김모 씨(28)는 2년 전 K대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세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그가 제대할 즈음 아버지가 쓰러져 무일푼이 되자 신약 임상시험 대상 아르바이트까지 할 정도로 안 해본 일이 없다. 토익은 학원비가 없어 시험만 세 번 치러 800점대 초반에 머물렀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1800만 원의 학자금 대출 원리금을 떠안아 취업이 급했다. 변변한 스펙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나은 직장을 찾아 전직을 거듭했다. 현 직장의 연봉은 2000만 원 정도인데 또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

부모의 경제 형편은 자녀의 미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넉넉한 가정의 자녀들이 스펙 쌓기에 더 유리하다는 점이 실제 연구 결과로 확인됐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19일 ‘대학 학비 조달 방식과 노동시장의 성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대학 등록금을 부모에게서 받은 학생에 비해 대출로 조달한 학생은 토익점수, 학점, 월평균 소득이 모두 떨어진다고 밝혔다.

직능원은 2009년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현재 20대인 9779명을 대상으로 스펙과 취업의 질을 조사했다. 부모의 월 소득이 500만 원보다 많을수록 등록금을 부모에게서 받은 비율이 높았다. 반면에 월 200만 원 미만이면 대출을 받은 비율이 높았다.

조사 결과 등록금을 부모에게서 받는 학생의 토익 점수는 773점, 학점은 82점(100점 만점 기준)인 반면 대출에 의존한 경우는 토익 754점, 학점 80.4점이었다.

이는 취업의 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월평균 소득은 학비를 부모에게서 받은 학생(198만1000원)이 대출을 받은 학생(182만2000원)보다 많았다. 정규직 비율 역시 학비를 부모에게서 받은 학생(70%)이 대출을 받은 학생(64.8%)보다 높았다.

등록금 조달 방식을 부모, 장학금, 본인, 대출 등 4가지로 분류했을 때 학점과 토익점수, 월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부류는 장학금 그룹이었다. 단, 정규직 비율은 부모에게서 학비를 받은 그룹이 최고였다.

직능원의 오호영 연구위원은 “대출로 학비를 조달한 경우 취업 준비가 미흡하고, 특히 학원비가 드는 영어의 격차가 컸다. 부모의 저소득이 자녀의 저조한 일자리로 이어지는 현상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학자금대출#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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