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보호망’ 거뒀더니 더 높이 날았다

  • Array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 ‘中企 적합품목제’ 앞두고 10개 업종 300개 中企 전수조사

#1. 제철 제강에 쓰이는 생석회를 생산하는 A사는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 폐지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1979년부터 생석회가 고유업종제 대상 품목으로 지정돼 27년 동안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럭저럭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정부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놓일 게 뻔했다. A사 대표는 “남들이 안 해본 걸 해보자”며 직원들을 독려해 석회를 원료로 새집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는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개발해냈다. 이에 힘입어 A사의 영업이익은 2005년 2399만 원에서 지난해 4억3966만 원으로 18배 이상으로 뛰었다.

#2. B사는 옥수수기름을 수의계약으로 군납하는 여러 중소업체 중 하나였다. 옥수수기름은 1983년 고유업종으로 지정돼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23년 만인 2006년 옥수수기름이 고유업종제 적용 대상에서 해제되자 B사는 다른 틈새시장을 찾았다. ‘웰빙’ 추세에 주목한 B사 대표는 쌀눈과 쌀겨에서 식용유를 뽑아내는 ‘현미유’를 개발해냈다. 그 결과 2005년 4억 원의 영업적자를 낸 B사는 지난해 3억4244만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흑자로 돌아서는 데 성공했다. B사 대표는 “이제 군납용 옥수수기름은 생산하지 않는다”며 “정부의 보호막이 걷힌 것이 오히려 약이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79년부터 시행됐던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뒤 해당 기업들의 경영성과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 고유업종제는 대상 품목이 1989년 237개에 달했지만 2001년 45개로 줄어든 뒤 2006년 완전히 폐지됐다.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와 함께 고유업종제 적용을 받던 2005년과 폐지된 뒤인 2010년 중소기업 300곳의 경영성과를 비교한 결과 전체의 79%인 237개 기업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어났다. 대상 품목은 최소 15년 이상 중기 고유업종으로 지정됐던 10개(옥수수기름, 생석회, 골판지상자, 재생타이어, 두부, 국수, 플라스틱용기, 수산물냉동냉장, 아스콘, 어육연제품)이며, 품목별 조사 기업 수는 7∼54개였다.

아스콘을 제외한 9개 품목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었으며 매출액은 평균 64.2%, 영업이익은 8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도와는 달리 고유업종제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지 못했으며, 정부의 보호에 안주하던 중소기업들이 제도 폐지 후 살길을 찾아 노력한 결과 오히려 성과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상당수 중소기업 관계자들도 고유업종제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고유업종제 시행으로 영세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오히려 기업경영이 어려워진 사례도 있었다. 아스팔트로 도로를 포장하는 아스콘 업종이 대표적이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중기 고유업종 지정이 기업경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건설경기가 악화돼 아스콘 수요가 크게 줄었는데도 오히려 업체 수가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2006년 고유업종제를 폐지한 정부는 이와 유사한 ‘중소기업 적합품목제’를 추진해 다음 달 적합품목을 발표할 예정이다. 동아일보가 분석한 고유업종제 10개 품목은 고스란히 동반성장위원회가 적합품목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중소기업의 안주를 막기 위해 졸업제(최장 6년 뒤 보호 대상에서 제외)를 새로 도입하는 등 적합품목제는 과거 고유업종제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보호영역을 따로 정해 대기업 진입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두 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고유업종제의 폐단이 이를 계승한 적합품목제에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유업종제가 적용됐던 당시나 지금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지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을 나누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며 “결국 적합품목제가 과거 고유업종제를 답습하기 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동반성장위가 적합품목제를 운영하더라도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적합품목제 잔류 기준을 엄격히 하거나 대상 품목을 과다하게 늘리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합품목에 안주하는 중소기업들이 기술혁신을 소홀히 해 제품의 질이 떨어지면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며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인해 피해가 극심한 분야로 적합품목의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