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독 발달한 전세제도, 갈림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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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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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 고령인구 고정수입원 필요, 월세가 부동산 대세이룰것
유지된다… ‘결혼때 전셋집’ 관행 여전… 월세 증가는 일시적 현상

보증부 월세가 확산되고 ‘순수 전세’가 줄면서 앞으로 월세가 보편적인 주택 임대차 형태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한국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전세 제도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두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는 양상이다.

다른 나라들의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는 월세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은 1970, 80년대 빠른 경제 성장과 높은 금리, 집값 상승 등으로 전세시장이 크게 발달했다.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넣어두면 안정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었고, 집을 매입할 때 전세를 안고 사면 대출 부담은 덜면서 집값 상승의 차익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의 저성장 추세와 부동산 경기 침체, 저금리 등의 변수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집주인들은 지금과 같은 저금리 구조에서는 은행에 전세금을 맡겨봐야 이자 수입이 보잘것없고 주식 같은 금융상품에 투자하기에는 위험성이 커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집값이 오른다 해도 물가상승률 정도에 그쳐 자본이득을 얻기도 힘들다. 그런 점에서 매달 수십만 원의 안정적인 현금 수입을 챙길 수 있는 월세의 장점이 돋보인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요인들을 거론하며 장기적으로 전세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최근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에 월세 소득을 노리는 돈이 몰리는 현상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최성호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 연구실장은 “10∼20년 뒤 고령인구가 늘면서 월세 소득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정기적인 수입이 발생하는 월세 시장의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증부 월세가 세입자들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세입자들로서는 현실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입자들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 전세금 상승분을 일시에 마련하기 어렵고 이사도 가기 힘든 여건에서는 차라리 매달 수십만 원의 월세를 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상대적인 약자인 세입자들은 자금 준비능력이 떨어지는데 보증금 인상 속도는 빠르다 보니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오피스텔과 원룸 등 소형주택이 대부분 월세 형태인 것처럼 주택을 ‘수익형 부동산화’하려는 추세가 강해 월세 시장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제도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중산층의 경제력 현실과 한국 사회의 고유한 관습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소득에 비해 집값이 여전히 높고 월세도 비싼 상황에서 소득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낼 수 있는 중산층이 별로 없고 결혼하는 자녀에게 전세금을 마련해 주는 관습도 여전하다는 것. 박원갑 부동산1번지 부동산연구소장은 “향후 주택 공급부족 현상이 해소돼 수요자가 우위를 점하면 상대적으로 수요자에게 이득이 되는 전세를 다시 찾을 것”이라며 “보증부 월세의 증가는 특수한 상황에 토대를 둔 것일 뿐 월세가 전세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가 주택 월세 시장이 활성화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김규정 부동산114 부장은 “지금은 월세 시장이 매우 작지만 앞으로는 주택 공급의 한 축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당장 전세가 자취를 감추진 않겠지만 월세가 늘어나는 쪽으로 주택 임대차 시장의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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