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원짜리 藥, 1원에 병원 공급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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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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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싸게 구입하는 병원 인센티브… 인하경쟁 불붙여
제약사 “병원 사용 약품 목록 일단 올리자” 저가 입찰

이달부터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제약업계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수백∼수만 원에 거래되던 약품이 단 1, 2원에 병원에 공급되기도 하고, 제약사들이 병원이 요구하는 가격에는 약품을 납품할 수 없다며 입찰을 포기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 병원에 인센티브 줘 가격인하 유도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 시행으로 가격이 낮아지면 정부는 이를 근거로 매년 상한 금액을 10% 이내에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의약품 거래에 ‘시장 기능’을 도입해 리베이트를 없애고, 약값 인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중 약품비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높아 인하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기존 리베이트에 의한 거래 관행으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매력 수준을 감안할 때 복제의약품(제네릭) 가격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

이는 지금까지 병원이나 제약사 모두 의약품 거래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은 약품비용을 환자가 부담하니 굳이 약품을 싸게 사려 노력할 이유가 없었고, 판매자인 제약사가 가격을 낮출 이유는 더욱 없었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의약품이 정부가 정한 상한가격에 거래된 것으로 신고됐다.

○ 약품 가격 인하 본격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서 약가 인하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희대의료원은 제네릭을 기존에 거래하던 가격보다 50∼60% 인하한 가격으로,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상한가보다 20∼30% 낮은 가격으로 입찰 견적서를 제출할 것을 제약사에 요구했다. 부산대병원과 경상대병원, 전북대병원 등도 기존 거래가격 대비 15% 이상 할인된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

병원에서 가격이 낮은 의약품을 찾다 보니 제약사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부산대병원 입찰에서 94개 품목이 ‘1원’에 낙찰되는 등 대형 병원에는 사실상 무료로 약품을 공급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이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품 목록인 ‘원내 코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약품 매출의 10% 정도인 원내 처방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원외 처방을 통해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부 약품은 유찰이 계속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전북대병원은 오리지널 단독 품목에 대해 6%의 가격 인하를 요구했는데, 일부 제약사가 그 가격으로는 공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전북대병원은 해당 제약사의 오리지널 중 특허기간이 만료된 약품에 대해서는 제네릭으로 대체하는 강수를 뒀다.

○ 제약사 “적절한 보상 받아야”

제약사들은 현재 상황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제약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제약사들이 무리하게 저가로 약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수익성 악화로 생산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2006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 도입 이후 특허 만료약 20% 가격 인하, 약가-수량 연동 인하, 리베이트-약가 연동제 등 다양한 약가 인하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약가 인하 정책이 도입돼 제약사들의 투자 의지가 꺾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문제점이 드러나면 점진적으로 해결해 가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도 전반에 대해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현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자료를 구축해 필요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

병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이 정부에서 정한 상한금액보다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면 차액의 70%를 요양기관에, 30%는 환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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