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이 미래 파워]<下>한국,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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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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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석학들 “한국인 ‘기업가 DNA’ 넘쳐… 혁신 창업 육성을”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신 파프리카랩 대표는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게 기업가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신 파프리카랩 대표는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게 기업가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기업가정신센터와 딜로이트 컨설팅의 기업가정신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2000년 이후 기업가정신이 계속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창업 최전선에서 기업가정신을 불태우고 있는 20, 30대 청년 세대도 적지 않다. 온라인게임 등 일부 분야에서는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무기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매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창업 3년차 청년 기업가 두 명을 만났다.》

[김동신 파프리카랩 대표] 프로게이머서 프로그래머로… SNS 게임회사 도전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기업가정신 아닐까요. 저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인이 되고 싶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임 개발사인 파프리카랩 김동신 대표(31·사진)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재학 시절 그는 국내 및 세계 대회를 석권한 프로게이머였다. 뭔가에 한번 빠지면 심하게 몰입한다는 그는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만 하며 지냈다. 프로게이머로 1년을 보내고 나자 게임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병역특례요원으로 엔씨소프트에 근무하면서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로 경력을 바꾸게 됐다.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렸을 때부터 꿈은 과학자였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업 활동의 의미와 기업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좋은 기술을 널리 전파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창업을 통해 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7년 9월 2명이 함께 설립한 파프리카랩은 회사 홈페이지도 영어로 되어 있다. 설립 때부터 국내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올해 초 선보인 아이폰용 모바일 게임은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최근에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소셜 게임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다. 소셜 게임은 사업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두 곳의 벤처캐피털로부터 10억 원을 투자받았다. 현재 직원은 24명. 매출액도 10억 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생 키워드가 말 그대로 기업가정신이라며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다.

“자전거 타기는 매뉴얼만 읽어서는 절대로 못 배우잖아요. 넘어지고 깨지면서 몸으로 익혀야 비로소 탈 수 있게 되죠. 저도 언젠가는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행동으로 못 옮겼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자전거 매뉴얼만 보다가 50대가 되어 ‘드디어 자전거를 탈 때가 됐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루라도 빨리 직접 타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전거 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함께 창업했던 친구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파프리카랩을 떠나는 등 힘든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한 번도 창업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건 갖지 못한 것이 아닌,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일 것 같아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창업에 대한 열망과 의지는 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후배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김 대표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가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지난달 7일 출범한 ‘YES(Young Entrepreneur Society) 포럼’의 초대 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을 젊은 후배들에게 알리고 공유하겠다는 취지다.


[서정민 바이미 대표] 대학생 시절 ‘여성 전용 택시’ 도전해 쓴맛… 또 창업


6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사무실에서 만난 서정민 바이미대표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기는 20, 30대인 것 같다”며 더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6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사무실에서 만난 서정민 바이미대표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기는 20, 30대인 것 같다”며 더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사업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6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사무실에서 만난 서정민 대표(29·사진)의 목소리엔 열정이 가득했다. 서 대표는 디자인콘텐츠 상품화 서비스 회사인 바이미(Vaimi)의 최고경영자(CEO). 2007년 7월 3000만 원의 자금으로 반지하 사무실에서 시작한 바이미는 현재 매출 수억 원에 직원이 12명인 회사로 성장했다.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소비자에게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핵심사업. 소비자는 티셔츠, 휴대전화 스킨, 머그컵 등 각종 의류 및 생활소품에 좋아하는 디자인을 입혀달라고 구매 신청을 하면 된다. ‘나만의 제품’을 선호하는 최근의 트렌드에 착안한 사업모델이다. 바이미는 사업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3억 원을 투자받았다.

서 대표는 한양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부터 창업이 꿈이었다. 대학생 때 몇몇 친구와 창업한 경험도 있다. 첫 창업 아이템은 여성 승객 전용택시인 ‘핑크캡’. 1년간 열심히 뛰어다녀 택시회사와 투자자 모집에 성공했지만 택시사업이 인·허가사업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서울시의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첫 창업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첫 창업 실패 후 취업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토익점수 올리고 인턴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내 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하는 것이었고, 이는 창업을 통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이미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비전을 공유할 능력 있는 개발자를 구하는 일이었다. 서 대표의 아이디어를 상업화할 플랫폼을 구축하려면 탁월한 개발자가 있어야 했다. 하루 출근하고 연락을 끊거나 역량도 없이 덥석 하겠다고 한 뒤 미리 받은 돈을 돌려주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개발자를 발견한 뒤 6개월간 글로벌 시장을 향한 꿈을 함께 펼치자고 설득했다. 마침내 그는 이전의 3분의 1 수준인 연봉을 받고 바이미로 이직했다.

“창업하면서 사람 때문에 가장 힘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사람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CEO 자격이 없다고 자책할 때면 ‘대표님 때문에 바이미에 있는 겁니다’라고 얘기해주는 직원들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중소기업청 청년정책자문위원 서울대표로 활동 중인 서 대표는 최근 창업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기는 20, 30대가 아닌가 싶어요. 창업은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멋진 일에 더 많은 청년 세대가 뛰어들면 좋겠습니다.”

[시리즈를 마치며]기업가정신 요체는 도전-실행력-창조

7월 1일 출범한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부설 기업가정신센터는 ‘한국 기업가정신의 국제 비교분석’을 첫 프로젝트로 정했다. 목표 기한은 ‘제3회 기업가정신 주간’(10월 11∼15일)이었다. 촉박한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완수하려면 센터 스스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전을 창의적으로 극복하고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 했다.

기업가정신센터는 대한민국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보다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 기업가정신의 현 수준이 어디쯤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국제비교를 통해 명확하게 진단한 보고서는 찾기 힘들었다. 제대로 된 진단이 있어야 정확한 처방도 나오는 법이다. 탁상공론만 하기보다 ‘실행하면서 배워나가기(learning by doing)’로 했다.

약 3개월의 분석 기간에 어려움도 많았다. 국제비교를 위해 최종적으로 27개 척도를 선정했지만 모든 척도를 객관성 있는 정량 데이터로 채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체코, 슬로바키아 등 일부 국가에선 데이터가 아예 없는 지표들도 있었다. 과거 10년간의 모든 시계열 데이터를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문제 해결을 위해 혼자 끙끙대기보다 ‘분업과 협업의 지혜’를 발휘해 나갔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 컨설팅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편 기업가정신센터 객원연구위원들의 지식과 지혜를 빌렸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원본지식(original knowledge)의 생산은 열린 자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으로 프로젝트 결과에 대해 한국 기업가정신 함양을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무모하게 보이는 도전, 기회가 보이면 추진하는 실행력, 열악한 제약 조건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기업가정신의 요체가 아닐까.

이번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미국의 기업가정신 석학들은 “기술형 혁신 창업이 낮다는 게 한국의 문제”라면서도 “한국인들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어 한국은 잠재적 기업가정신이 풍부한 나라”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한국인의 핏속에 내재된 ‘기업가적 DNA’에 대한 믿음과 칭찬이었다. 이번 동아일보 기업가정신센터의 분석 결과가 한국인의 기업가적 DNA를 일깨우는 데 일조하길 기대해 본다.

이방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부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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