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강운]현대그룹 ‘맷집’ 키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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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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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현대는 최근 채권단이 재무구조개선약정(재무약정) 대상으로 확정하자 ‘주거래은행 교체 검토’로 강하게 맞섰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대드는’ 예외적 상황은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주거래은행 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지만, 그것보다 현대 측이 반발하는 이유가 더 궁금해진다.

현대는 한마디로 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획일적 잣대로 재무약정 체결 대상을 선정해 경영 개선은커녕 기업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재무약정은 재무구조가 불량한 기업이 채권단과 맺는 ‘경영 정상화’ 약속이다. 기업은 약속 이행을 위해 자산 매각, 자본 유치,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재무약정 대상에 현대가 포함된 것은 지난해 큰 폭의 적자를 냈고, 부채 비율이 높아진 때문이다. 금융계열사인 현대증권을 제외하면 현대그룹 매출에서 현대상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이른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해운경기가 위축되면서 사상 최악인 5654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부채 비율은 284%로 높아졌다.

그러나 현대 측은 “올해는 영업이익을 내고 있고 ‘부채 비율 200%’의 기계적 적용은 대규모 장치산업인 해운업의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올 1분기 116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5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해운경기 전망이 낙관적으로 바뀌면서 추가적인 이익 개선도 기대된다.

해운업을 하려면 선박 외에도 터미널, 창고 등 물류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배를 살 때는 80%가량을 금융권에서 빌린다. 자본집약 산업인 해운업의 특성상 금융차입은 불가피하고, 부채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선박 등 자산의 담보가치가 뛰어나 설령 기업이 잘못되더라도 돈을 떼일 염려가 적은 것이 해운업이라는 것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약정 대상 기업을 선정한 만큼 현대만 예외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무약정이라는 것이 부실 우려 기업의 경영 개선을 유도하는 선제적 구조조정 조치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경제가 개선되고 있는 지금이 기업 구조조정의 적기(適期)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을 틈타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는 기업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따끔한 목소리도 나온다.

재벌그룹들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핵심 요인 중 하나다. 그때의 뼈아픈 경험이 바탕이 돼 현재의 상시 구조조정 체제가 정비됐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부도가 난 다음 회사를 살릴지 말지를 결정했지만 요즘은 재무약정,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 선제적인 조치로 시장 충격을 크게 줄이고 있다. 금호산업 등에 대한 워크아웃이 발표됐을 때도 관련 기업들의 주가만 떨어졌을 뿐 이로 인한 시장 동요는 거의 없었다.

재무약정으로 현대는 조달금리 상승, 해외영업 차질 등 추가적인 불이익을 걱정하고 있다. 숙원인 현대건설 인수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현대가 반발하는 이유에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이미 결정이 내려진 만큼 올해 장사를 잘해 다음 번 재무평가를 할 때 명예회복을 노렸으면 한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경제 체질을 굳건히 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이강운 산업부 차장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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