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보다 이자’… 장기예금에 104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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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 리스크 회피 양상
올해 실질투자 15.5% 줄어

한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104조 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돈을 은행의 저축성예금에 넣어둔 채 투자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살아날 것을 자신하지 못하는 데다 뚜렷한 신성장 아이템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민간 기업들이 장기 저축성예금(예치기간 1년 이상)에 맡겨둔 자금은 9월 말 현재 103조763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대치로 지난해 9월 말(78조9233억 원)에 비해 31.5%(24조8405억 원)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말 94조2241억 원이던 기업의 장기 저축성예금 규모는 올해 3월 말 96조6415억 원, 6월 말 100조5324억 원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1년 미만의 단기 저축성예금도 작년 9월 말 114조856억 원에서 올해 9월 말 141조7029억 원으로 24.2%(27조6173억 원) 증가했다.

당국의 저금리 정책과 신용보증 확대 등으로 기업의 자금 사정은 넉넉해졌지만 투자는 오히려 위축됐다. 올해 1∼9월 명목 설비투자액은 68조65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71조1429억 원)보다 4.4% 감소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설비투자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올해 들어 감소세로 돌아선 것.

특히 물가 효과를 제외한 실질 설비투자액은 올해 1∼9월 60조529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71조356억 원)보다 15.5%나 줄었다. 이 같은 감소 폭은 1∼9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44.9%) 이후 최대치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과 환율 변동 등 위험요소가 여전히 많기 때문에 기업들이 은행에 돈을 묻어두고 설비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지난해 9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극심한 자금난을 경험한 대기업들이 향후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질 것에 대비해 미리 여유자금을 확보해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재정집행을 통한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기업의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면 내년 경기회복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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