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고용창출-인구유입-지방세 308억… ‘탕정’이 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이 들어선 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의 탕정사업장 1단지와 2단지 전경. 위쪽은 현재 7세대와 8세대 LCD를 생산하는 최대의 LCD 단지가 들어선 1단지이고, 아래쪽은 2단지로 현재 삼성전자 임직원이 거주하는 아파트만 들어섰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이 들어선 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의 탕정사업장 1단지와 2단지 전경. 위쪽은 현재 7세대와 8세대 LCD를 생산하는 최대의 LCD 단지가 들어선 1단지이고, 아래쪽은 2단지로 현재 삼성전자 임직원이 거주하는 아파트만 들어섰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삼성전자, 충남 아산 ‘탕정 기업도시’ 가보니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4개 중 1개는 ‘메이드 인 탕정’이다. LCD 시장 1위인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의 27%를 점유하고 있는데 대부분 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LCD 라인에서 만들어진다.

탕정 라인은 요즘 주문받은 물량을 소화 못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올해 4월부터 현재까지 8개월 연속 가동률 100%를 자랑한다. 삼성전자 LCD 부문은 3분기(7∼9월)에만 1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지역경제도 활기를 띠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탕정을 기업도시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탕정도 초기에는 여러 이익집단의 반발로 도시 조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족도시라고 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삼성전자의 탕정 기업도시 실험의 명과 암을 짚어본다.》
시민단체 반발에 계획 축소… 교육-의료 등 자족기능 열악
아파트단지 밖은 허허벌판… 갈매기 아빠-통근족 애환도


12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삼성전자 탕정사업장에서 도보로 20여 분 떨어진 이곳에는 주변의 논밭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삼성전자가 탕정사업장 임직원 전용으로 지은 아파트(트라팰리스)다. 아파트 상가에서는 가족들은 서울에 있고 혼자 머무는 이른바 ‘갈매기 아빠’들이 삼삼오오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나름대로 자족할 수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가족이 살기에는 여전히 불충분하다”며 “특히 교육 여건이 안 좋아 가족은 서울에 두고 주말에만 상봉하는 직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13일 오전 탕정사업장 앞에 통근버스 50여 대가 줄지어 도착했다. 삼성전자 직원 수백 명이 쏟아져 나왔다. 서울과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경기 용인시 등에서 온 버스다. 이들은 출근하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장거리 통근족’이다. 고속철도(KTX)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은 1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충남 탕정은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점에서 기업도시 조성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조성 초기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원래 계획이 축소되면서 수도권만큼 정주 여건이 좋은 도시는 되지 못했다.

○ 시민단체 반발로 무산된 ‘삼성기업도시’

탕정은 기업(삼성전자)이 자발적으로 들어와 기반시설을 만든 진정한 의미의 ‘기업도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추진하고 기업을 끌어들이는 일반적인 기업도시와 개념이 다르다. 이런 곳인데도 장거리 통근족과 갈매기 아빠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삼성전자는 탕정에 자족도시 개념의 ‘삼성 기업도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천안과 아산에 LCD 5, 6세대 생산라인 등 연관 산업이 있고 물류 동선이 좋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초에는 사원용 아파트뿐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를 짓고, 사립학교를 포함한 초중고교 9개, 공원 및 녹지시설, 각종 상업지구가 들어선 신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아산YMCA 등 지역 시민단체가 ‘삼성공단 반대투쟁위원회’를 꾸리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특정 기업에 개발 이익이 넘어가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특혜 소지가 있다’며 2단지 323만 m²(98만 평)의 용지를 211만 m²(64만 평)로 대폭 축소한 채 ‘산업단지’로 개발 계획을 승인했다.

○ 자족 도시는 ‘절반의 성공’

트라팰리스에는 현재 2225가구가 입주해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만을 대상으로 분양하되 5년간 전매 금지라는 단서가 따라붙었다. 단지 내에는 수영장과 사우나, 노래방 등의 시설이 있지만 단지 밖은 허허벌판과 다름없다.

교육 여건도 여전히 불충분하다. 학교는 충남외국어고와 탕정중, 탕정초교 등 3개뿐이다. 학원도 부족해 인근 천안으로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백화점이나 극장 등 여가 시설도 탕정에는 없어서 남편을 따라 탕정에 온 주부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한 주민은 “종합병원은 고사하고 동네 의원도 없어서 불편하다”고 했다. 종합병원은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천안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가시화되고 있다. 2008년을 기준으로 아산과 천안에서의 삼성전자, 삼성코닝정밀유리 등의 직간접적인 고용창출 효과는 3만2000명으로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조1990억 원에 이른다. 이들이 지역 내에서 소비한 금액은 9941억 원으로 지역 내 소비율이 44.5%에 이른다.

실제로 공장 근처에 식당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20여 곳으로 늘었다. 인근에서 토장복국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하종률 씨는 “1979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탕정 사업단지가 가동된 뒤 매출이 30%가량 뛰었다”고 말했다.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택시 운전사들도 함박웃음이다.

▼ “기업에 개발 자율권 더 줘야 기업도시 성공”

○ 글로벌 기업도시 되려면


탕정으로의 인구 유입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도 주문량이 몰리자 생산라인에서는 직원을 세 자릿수로 뽑았다. 앞으로 직원 전용 아파트 1500여 채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2015년까지 투자를 마치면 5만 명 이상이 추가로 고용되는 효과가 생긴다. 삼성전자 LCD부문이 충남 아산 지역에 납부하는 지방세는 지난해 308억 원에 이르렀다. 2015년 이후에는 1500억 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삼성의 탕정 사업단지가 제대로 된 기업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현재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1단지 이외에 앞으로 건설될 2단지도 산업단지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상업시설은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못한다. 기업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와의 공감대가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에 도시개발 자율권을 더 많이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도시는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에 건의할 때만 해도 생산시설뿐 아니라 기반시설과 정주시설까지 기업이 종합적으로 개발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제안됐다. 당시 전경련 기업도시팀장을 맡았던 유재준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아직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기업이 자발적인 투자에 나선 지역에선 정부가 좀 더 융통성 있게 도시개발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탕정=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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