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아우토반 속력과 한국경제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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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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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유럽으로 자동차 테마여행을 떠났던 기자는 속도무제한으로 유명한 독일 아우토반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중형차인 ‘E240’을 몰고 일주일간 약 4000km를 주행했다. 속도제한이 있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속 160∼180km로 달렸고 최고로 시속 230km까지 내봤지만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빨리 달려도 더 높은 속도로 나를 추월하는 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의 고속도로라면 ‘살인적인 속도’라고 비난받을 만한 스피드가 아우토반에서 허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우토반은 설계속도가 높아 빠르게 달리면서도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는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운전자들이 추월차로와 주행차로를 철저히 구분해서 달리며 교통흐름을 깨지 않는 질서가 몸에 밴 것이 더 큰 이유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추월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1차로만 고집하며 달리거나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쑥불쑥 끼어들고, 지그재그로 난폭운전하는 운전자가 있다면 아무리 도로 사정이 좋아도 속도무제한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교통사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열악한 편이다. 국토면적에 비해 자동차가 많고 산악지형으로 도로 사정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물류의 속도가 떨어진다면 국가의 전체적인 생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 정부는 매년 수조 원을 도로 건설에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찰청에서 고속도로 제한속도의 상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산업계에선 미약하나마 경제에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8일 “일부 고속도로 구간의 제한속도를 시속 10km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한속도 상향 조정이 시기상조라는 여론도 많지만 찬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 상당수가 이미 제한속도를 넘어서 달리고 있어 시속 10km 정도 높이더라도 과속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그동안 제한속도를 지켰던 차량들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과속했던 대다수 차량과의 속도편차가 줄어 교통사고가 감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속도 문제지만 교통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교통전문가들은 과속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 고속도로의 흐름을 깨는 저속운행 차량이라고 지적한다. 제한속도 상향 조정으로 자동차의 평균속도는 높아졌는데 과적을 하고 천천히 달리는 화물차 등의 속도는 그대로라면 차량 간의 속도편차가 커져 사고의 위험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교통흐름을 깨는 저속운행 차량과 2차로가 비어 있는데도 1차로를 달리는 차량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지 않고 제한속도를 높이는 것은 사고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 선회한 듯하다. 친기업과 친서민 둘 다 중요하지만 고속도로에서 교통흐름이 중요하듯 경제정책에서도 흐름이 중요한 것 아닐까.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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