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따기 아직 이릅니다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사상 최대 실적’ 뒤에 가려진 환율의 착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서관 15층. LG전자 남용 부회장은 집무실 바로 옆에 설치된 ‘워룸(War Room)’에 하루에도 네댓 번씩 들락날락했다.

‘워룸’은 각 사업본부에서 ‘차출’된 직원 15명이 LG전자가 진출한 전 세계 165개국 상황을 살피고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작전’을 짜는 곳.》

전자업체 4곳 매출 달러 환산해보니
글로벌 금융위기 전 수준에 못미쳐
환율효과 사라지는 하반기가 진짜 승부처

LG전자는 2분기(4∼6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고삐를 풀지 못하는 것은 상반기(1∼6월) 해외 매출을 달러화로 환산했을 경우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감소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세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경영진 회의에서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 것과 무관치 않다. LG전자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의 상당 부분은 원화 약세에 따른 동반효과가 적지 않다”며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일보 산업부가 최근 업황이 가장 좋은 전자업종 기업 4곳의 2008년 1분기∼올 2분기 실적을 해당 분기별 원-달러 평균 환율을 적용해 달러화로 환산해 보니 ‘사상 최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실적 회복’ 등의 수식어가 붙은 국내 기업들의 화려한 실적 이면에는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착시 효과’가 있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해외 매출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다. 따라서 달러화 표시 매출이 각 기업들의 ‘진짜 성적표’라고 할 수도 있다.

○ 화려한 실적 퇴색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실적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2분기 매출이 32조5100억 원으로 지난해 2분기(29조1000억 원)보다 11.7% 증가했다는 것. 그러나 달러화로 환산한 삼성전자 2분기 매출은 252억7700만 달러로 지난해 2분기(285억8500만 달러)보다 11.6% 감소했다. 달러화를 기준으로 할 때는 금융위기 전 실적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셈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2조5200억 원)도 원화로는 지난해 같은 기간(2조4000억 원)보다 5.0%늘었지만 달러화로 환산한 영업이익은 올해 2분기 19억6500만 달러로 전년 동기(23억5700만 달러) 대비 16.6% 감소했다.

LG전자의 올 2분기 매출도 14조49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다. 하지만 이를 달러화로 환산하면 112억7200만 달러로 지난해 2분기(125억1000만 달러)보다 적다. 다만 2분기 영업이익(1조1300억 원)은 8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8억4000만 달러)보다 많았다.

2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거둔 LG디스플레이도 원화 매출(4조8900억 원)을 달러화로 환산하면 38억200만 달러로 지난해 2분기(41억3600만 달러)의 실적이 더 많다. 삼성전기도 2분기 매출이 1조31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지만 달러화 환산 매출은 10억1800만 달러로 지난해 2분기(10억2100만 달러·약 1조400억 원)가 더 많다.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실적이 좋아졌다고 자만하지 말자. 우리가 잘해서 100% 실적이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 기업들 공격-긴축경영 강화 태세

기업들은 원화 강세로 환율 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에 진짜 실력이 발휘될 것으로 예상하고 공격 및 긴축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등 전자제품 성수기이기 때문에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강화한 해외 경쟁사가 치고 올라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하반기 매출을 30%가량 더 늘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도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등 3대 전략 비용은 올해 전년보다 10%씩 늘리지만 소모성 경비 등은 줄이는 ‘내핍경영’을 유지할 계획이다. 정도현 LG전자 부사장(CFO)은 “미국의 실업률이 10%에 육박해 글로벌 수요 회복세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3분기에는 경쟁의 강도가 심해져서 섣불리 낙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경기 파주 공장에 3조2700억 원을 투자해 대형 TV용 패널을 생산할 8세대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글로벌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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