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부동자금 500조…은행-증권사 자금 유치전 치열

  • 입력 2009년 2월 23일 22시 48분


부동자금이 도대체 얼마만큼 불어날 것인지, 움직인다면 언제 어디로 갈 까. 요즘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다. 무려 500조원에 이르는 시중 자금이 국고채, 양도성예금증서(CD) 등 안전자산에만 몰려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한국은행 주최로 시중은행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했고, 급기야는 정부 여당에서 "100조 원의 금고를 열어달라"며 대기업들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경제가 회복되려면 이 돈이 시장에서 원활히 돌면서 소비와 투자를 촉진해야 하는데 그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기관들은 "어느 기업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데 어떻게 대출이나 투자를 하겠냐"며 부도 리스크가 내려가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여유자금이 많은 대기업들은 신규투자를 꺼리고 있다.

●꽁꽁 묶인 부동자금 500조 원

23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시중의 단기부동자금 규모는 좁게 보면 200조 원, 범위를 넓게 잡으면 최대 500조 원으로 추정된다.

우선 대표적인 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은 19일 현재 124조3158억 원으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또 은행의 실세요구불 예금 잔액은 지난 1월 말 기준 63조6879억 원으로 11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세며, 증권사의 자산관리계좌(CMA) 잔액도 13일 현재 35조2343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은행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180조 원, 양도성예금증서(CD) 및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등 시장성 수신 잔액 120조 원도 크게 보면 시중의 단기유동성에 포함되는 지표다.

정부는 이들 자금이 하루 빨리 시중에 풀려 기업대출, 투자확대로 연결되길 바라고 있지만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 모두 말을 듣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수차례 인하했지만 기업들의 자금조달수단인 회사채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 펀드수탁고가 줄어들어 수급이 꼬인 증시도 목이 타긴 마찬가지다.

●금융사들, 단기부동자금 유치전 치열

결국 금융회사들은 이런 부동자금을 흡수하기 위한 유치전에 돌입했다. 어차피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펀드 등 위험자산 투자를 꺼리고 있는 바에야, 다른 금융회사에 가 있는 부동자금이라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증권은 일부 우량채권과 절세형 채권을 대상으로, 채권을 매수한 고객이 다시 되팔고 싶을 때 판매사에서 이를 매수해 주는 '마켓 메이킹' 마케팅을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최근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4%대 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보다 금리가 높은 우량채권에 대한 영업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에 묶인 자금을 가져오겠다는 뜻이다.

우리투자증권도 최근 법인용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랩(MMW)'을 출시했다. 이는 돈이 지나치게 몰리면서 안정적인 운용이 어려워진 MMF의 대안 상품격으로, 당일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시장 금리는 낮은 수준인데도, 향후 경기전망이 너무 불확실하다보니 이 돈이 위험자산으로 옮겨오지 않고 있다"며 "실물경기가 바닥을 찍으며 올라서고 있다는 확신이 시장에 퍼져야만 자금이 다시 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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