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중도금-잔금 연체자 크게 늘었다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주택담보 추가 대출 안돼 서민층 신불자 위기

건설사도 자금 제때 확보못해 유동성위기 커져

회사원 구모(40) 씨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분양받은 159m²(48평형) 아파트 중도금 때문에 얼마 전 은행을 찾았다가 대출이 안 돼 당황했다. 현재 사는 116m²(35평형) 아파트를 담보로 추가 대출을 원했지만 은행 측은 “아파트 값이 1억 원 이상 떨어졌다”며 손사래를 쳤다. 구 씨는 “대출을 못 받으면 6차 중도금 6000만 원을 낼 방법이 없다”며 답답해 했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거래 실종 등으로 아파트 중도금이나 잔금을 연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중도금이나 잔금 미납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등 가계부실이 심해지고 건설사들은 자금사정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경기침체로 연체자 증가

12일 상위 10위권 대형 건설업체에 따르면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 연체율은 지난해 초 10%대에서 최근에는 30∼40%대로 급증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1월 입주한 인천 연수구 송도신도시의 A단지는 입주 초기 잔금 연체율이 10% 정도였지만 최근 입주한 B단지는 40%대로 치솟았다.

한모(51) 씨는 대구 수성구의 194m²(58평형) 아파트 입주지정기간을 수개월 넘긴 현재까지도 잔금을 못 내 속수무책이다. 분양가 7억 원 가운데 한 씨가 못 낸 잔금은 1억8000만 원. 한 씨는 “어떻게든 집을 팔아야 잔금을 낼 수 있는데 매수 문의조차 없다”며 “설상가상으로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2006년 대전 유성구에서 149m²(45평형) 아파트를 계약한 김모(47) 씨는 주식과 펀드에 넣어둔 중도금 및 잔금용 2억 원이 현재 반 토막이 난 상태다. 지난해 펀드 열풍에 휩쓸려 욕심을 낸 게 화근이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115m²(35평)를 분양받은 이모(43) 씨는 현재 사는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를 전세로 돌려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세금이 1년 사이에 최고 1억 원가량 내린 데다 전세를 싸게 내놔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 결국 입주를 포기했다.

새 아파트 입주가 지연되면서 ‘불 꺼진 아파트’도 늘고 있다. 지난달 17일 입주가 시작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대규모 단지(총 2991채)는 입주율이 15%에 그쳤다.

○ 가계 부실과 건설사 유동성 위기

중도금과 잔금 연체가 급증하면서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가계부실과 건설사의 유동성 악화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충남 아산시에서 150m²(45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회사원 정모(52) 씨는 잔금 8000만 원을 1년째 못 내 지난해 말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잔금을 못 내면 입주는 물론 주택 소유권을 얻을 수 없다”며 “연체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시행사와 계약한 기간에 공사를 마쳐야 하는 건설업체는 당장 공사대금으로 쓸 중도금 등이 안 들어오면 돈을 빌려 공사를 해야 한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연체율이 20%를 넘으면 금융비용이 치솟아 사실상 남는 게 없다”며 “일부 입주자는 건설사가 계약해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일부러 연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선덕 한국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중도금이나 잔금 연체는 개인과 기업 간 계약의 문제여서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정부가 가계와 건설사 유동성 대책을 세울 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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