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 택지개발지구 “밤이 무서워”

  • 입력 2008년 7월 27일 19시 51분


27일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한 아파트단지 내 상가가 텅 비어있다.[동아일보]
27일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한 아파트단지 내 상가가 텅 비어있다.[동아일보]
상가-병원 등 생활기반시설 턱없이 부족

한반에 48명 함께 수업하는 초등학교도

25일 오후 경기 용인시 동백택지지구의 '쥬네브' B동 상가. 대다수의 상가가 비어있는 건물 안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서 있었다. 곳곳에 걸린 전등도 꺼져 있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상가 컨설팅을 맡은 도래D&C 김기오 과장은 "초기 입주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공모형PF(프로젝트 파이낸싱)사업 1호로 2년여 전부터 입점을 시작했지만 현재 전체 상가의 20%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동백지구 주민들이 쇼핑이나 문화시설을 이용하려면 용인시 죽전이나 수원시 영통까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초기 입주한 주민들이 겪는 극심한 불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입주와 동시에 병원, 학교, 상가시설 등이 들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5년여 전부터 도입된 공모형PF사업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공모형PF란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의 초기 입주민들이 생활 기반시설 부족으로 겪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공공기관이 민간업체와 함께 출자해, 입주와 동시에 기반시설을 짓도록 유도하는 사업이다.

최근에는 분양가상한제의 도입으로 주상복합건물의 주거부문에 대한 수익성이 악화돼 사업 자체도 주춤거리고 있다.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밤에는 나가기도 무서워"

최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에 입주한 30대 주부 박모 씨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 때문에 자연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가 오히려 큰 곤욕을 치렀다. 6살 난 아이가 한 밤중에 심하게 열이 났지만 단지 안에서는 약국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박 씨는 "집에서 나온 지 2시간여 만에 서울역에 있는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아이를 입원시켰다"며 "다시 시내 근처로 이사 갈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1지구에 거주하는 50대의 한 주민은 "뉴타운에는 경찰서 지구대가 한 곳도 없어서 아파트 경비원이 치안을 맡고 있다"며 "사람도 별로 없어서 밤에는 나가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입주한지가 2년여가 돼가는 경기 화성시 동탄1신도시. 이 곳에는 학교가 부족하다 보니 S초등학교는 한 반 학생수가 최대 48명이 넘어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음악실, 미술실 등의 특별활동실로 지었던 교실도 모두 일반 학급으로 사용 중이라 특성화 수업은 꿈도 못 꾸는 실정.

신도시 안의 삼부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42) 씨는 최근 사고로 '동탄119안전센터'에 구조됐지만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다.

119안전센터의 한명자 응급구조사는 "응급실이 있는 경기 오산시의 병원까지 가는데 15분이 넘게 걸렸다"며 "신도시 내에 응급실이 있어서 5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뇌사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분양가상한제도 걸림돌

택지개발지구의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는 병원, 대형마트 등을 운영하는 민간업체들은 일정 수준이상의 인구가 확보되지 않으면 택지지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모형PF사업이 도입됐지만 효과가 별로 없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민간업체들이 공모형PF사업에서 사업자로 선정되려면 땅값을 비싸게 써내야 되기 때문에 결국 상가분양 가격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라며 "임대사업자도 높은 가격에 분양받은 만큼 점포 임대료도 높아 상인들이 입점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분양가상한제까지 도입되면서 사업자체가 지연되기도 한다. 민간업체들이 주거부문에서 얻은 수익으로 상가 등을 지었지만 상한제로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관련 공공기관의 소홀한 대책도 지적된다.

은평뉴타운 사업자인 SH공사의 한 관계자는 "2004년부터 은평뉴타운 계획이 잡혔는데 관할 경찰서인 은평경찰서는 아직도 예산이 없어서 뉴타운 내에 지구대를 설치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공모형PF사업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모든 신도시에서 초기 입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예진(연세대 경영학과 4년), 박현철(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