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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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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삼성그룹의 쇄신안 발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먼저 대(對)국민 사과 및 자신의 퇴진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구체적인 경영 쇄신 내용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실장은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폐지된 이후에는 회사별로 독자적인 경영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 실장 발표 내용 및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각 사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해 설명해 달라.
“삼성그룹 계열사의 경영진은 전문경영인이다. 그룹의 총괄적인 전략 수립을 위해 이 회장이나 그룹의 전략기획실이 존재했는데, 이 때문에 각 사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이 전문경영인으로 비치지 않았을 수 있겠다. 이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 사별로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독자적인 경영체제가 이뤄질 것이다.”
―이 회장의 퇴진으로 과도기 상황이 예상되는데….
“각 사 경영진이 충분히 회사를 이끌 능력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재용 전무의 거취는….
“이 전무는 5월로 예정된 삼성전자 인사에서 직책 등이 정해질 것이다. 이 전무는 현재 경영 수업 중이며, 승계 문제는 결정된 바 없다. 이 회장은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을 승계하면 불행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전략기획실이 없어진 후 사장단 회의의 역할은….
“사장단 회의는 계열사 간 공통된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거나 그룹 전체의 공동 관심사 등을 협의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윤순봉 전략기획실 홍보팀장은 “사장단 회의는 협의를 하는 곳이지,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는 아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차명계좌의 경우 과거에 내지 않은 세금 모두를 내겠다는 것인가.
“공시시효가 지난 세금은 납부하려 해도 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특검 수사 결과 조세포탈한 것으로 나타난 부분에 대해 세금을 내고, 남은 것은 이 회장이나 이 회장 가족이 쓰지 않고 사회에 유익하게 쓰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차명계좌로 밝혀진 모든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나.
“조세포탈에 연루된 계좌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다. 삼성생명 계좌는 과거 경영권 유지를 위해 명의신탁을 한 것으로 조세포탈 계좌가 아니다. 삼성생명 계좌는 실명 전환될 것이다. 조세포탈로 문제가 된 계좌는 세금 내고 유익한 용도로 쓰겠다. 그리고 사회 환원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다. 용도는 정해지지 않았다. 회장과 회장 가족이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오늘 전체 주주들에게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는 삼성 각 계열사가 더욱더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나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 달라.”
―이건희 회장의 퇴진이 혹시 특검과 합의된 내용은 아닌가.
“특검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특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인 3월 초에 퇴진 의사를 비쳤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경영쇄신 내용 全文 ▼
【1】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서 퇴진합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에서 사임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이 회장은 그동안 기업 경영에 온 힘을 다해 왔지만 국민의 기대와 뜻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지난 몇 달간 고심 끝에 퇴진한다고 하였습니다. 삼성 사장단을 비롯한 임직원 전원은 이 회장이 못다 이룬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데 매진하는 한편 국가경제 살리기에 더 한층 노력하기로 다짐했습니다.
【2】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함께 홍라희 관장도 리움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직을 사임합니다.
【3】 이재용 전무는 삼성전자의 최고고객책임자(CCO)를 사임한 후 주로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 개척 업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4】 전략기획실은 해체합니다. 그동안 전략기획실은 대규모의 투자가 수반되는 그룹 차원의 전략사업을 육성하고, 각 계열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지원해 왔습니다.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각사의 독자적인 경영역량이 확보되었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하여 해체하기로 하였습니다.
【5】 전략기획실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잔무 처리가 끝난 후 일체의 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6】 특검에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신탁한 것으로 이번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용도에 대해서는 이러한 회장의 취지에 맞도록 시간을 갖고 준비하겠습니다.
【7】 삼성생명, 증권, 화재 등 금융사에 대해서는 경영 투명성을 더 높이고 정도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겠습니다. 삼성화재 황태선 사장, 삼성증권 배호원 사장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합니다. 그동안 삼성이 은행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명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성은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습니다. 오직 금융사들의 경영을 더욱 튼튼하게 다져서 일류 기업으로 키우는 데 매진할 것입니다.
【8】 사외이사들이 더욱 객관적인 시각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삼성과 직무상으로 연관이 있는 인사들은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겠습니다.
【9】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습니다만,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약 20조 원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순환출자 문제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 5년 내에 매각하는 등 계속 검토하겠습니다.
【10】 이건희 회장 퇴진 후에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할 일이 있을 경우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장단회의를 실무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 서비스를 전담하는 업무지원실을 임원 2, 3명 정도의 소규모 조직으로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설치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 중 전략기획실 해체, 사임 등 가능한 부분은 6월 말까지 관련된 법적 절차와 실무 준비를 모두 마치고, 7월 1일부터 차질 없이 시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발표한 것으로 삼성의 쇄신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칠 것이 있으면 적극 고쳐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