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公, 부도업체에 1800억 ‘눈먼 투자’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증권예탁결제원 입사면접시험 성적 조작

감사원, 공기업 사장 등 10여명 수사 의뢰

‘부도회사에 돈 투자, 채용점수 조작, 거래처 돈으로 평일 골프까지….’

감사원이 26일 밝힌 일부 공기업 비리 사례다. 감사원은 이달 10일 한국전력 등 31개 공공기관에 대한 예비조사를 마친 뒤 24일부터 본감사를 해왔다.

감사원에 따르면 대한석탄공사는 지난해 허위문서를 만들면서까지 자금을 모아 부도난 건설업체에 총 1800억 원을 지원했다. 또 증권예탁결제원은 신입사원 채용 시 면접과 필기시험 점수를 조작해 합격 가능성이 있던 후보자를 5명이나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석탄공사 사장과 증권예탁결제원 사장 등 부정·비리 혐의 관련자 10여 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26일 밝혔다.

정부는 대대적인 이번 감사를 통해 공기업을 통폐합, 민영화 대상 등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이는 정부의 대대적인 공기업 개혁에 앞선 포석이라는 관측이 높다.

▽부도난 회사의 어음 매입=석탄공사는 지난해 4∼5월 시설투자에 사용할 차입금 418억 원을 용도변경 승인 없이 부도난 M건설업체의 어음을 매입하는 데 썼다.

석탄공사는 이어 이 업체의 어음이 거래중지돼 투자금 전액이 손실될 우려가 있자 직원 퇴직금 중간정산을 위해 1100억 원 상당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허위문서까지 만들어 회사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6∼11월 31회에 걸쳐 M건설업체에 저리로 1800억 원을 지원해 결국 이 업체의 부도를 막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담보도 확보하지 않아 3월 현재 대여금 잔액 1100억 원이 전액 회수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 측은 “이런 비정상적인 투자 행태는 유동자금 운용담당 본부장 등이 주도했고 사장은 이런 사실을 나중에 보고받고도 조용히 사건을 무마하도록 방치했다”며 석탄공사 사장 등 관련자 4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채용점수 조작=‘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해마다 지원자가 넘치는 공기업에서 채용점수를 조작하는 일도 생겼다.

증권예탁결제원은 지난해 하반기 신규 직원을 채용하면서 최종 단계인 임원면접 점수표를 무려 23군데 조작해 합격 순위 내에 있던 5명을 탈락시키는 대신 순위 밖에 있던 5명을 합격 처리했다.

필기시험 점수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11명을 탈락시키고, 탈락 대상인 14명이 그 다음 단계인 실무진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증권예탁결제원 사장 등 6명을 사문서 변조 및 행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거래처 돈으로 평일 골프=60여 거래처로부터 ‘친목 도모’ 명목으로 연회비를 받아 이 돈으로 골프를 친 공기업도 있다.

한국산업은행의 자회사인 산은캐피탈은 직원 명의로 통장을 개설해 대출·리스 등을 받은 60여 거래업체로부터 친목을 도모한다며 연회비 30만∼100만 원을 송금받아 직접 관리했다. 3월 현재까지 거둔 회비는 총 1억2000만 원으로 7000만 원은 이미 썼고 5000만 원이 남았다.

이 돈으로 이 회사 임원들이 거래업체 사장들과 함께 2005년부터 매년 2, 3차례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공기업 예비조사 기간이던 21일 오전부터 22일 오후까지 제주의 모 골프장에서 이 회사 임원 5명이 거래업체 사장 17명과 골프를 치고 소요 경비를 회비에서 집행한 것을 적발해 현재 향응성 여부에 대해 조사 중이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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