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마케팅 ‘양날의 칼’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저가(低價) 항공사인 한성항공은 28일 다국적 투자운용회사인 ‘마라톤에셋 매니지먼트’로부터 여객기 6대와 500만 달러를 투자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자들이 아시아 저가 항공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본 결과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1억6100만 대를 팔아 모토로라(1억5900만 대 판매)를 누르고 2위 자리를 꿰찼다. 그동안 고가 제품만 만들던 ‘프리미엄 전략’에서 벗어나 저가 휴대전화 생산에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가 시장에서 활로를 찾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저가 시장에 치중하다 보면 ‘싸구려 업체’라는 이미지가 굳을 수 있는 데다 치열한 원가 경쟁으로 수익성은 떨어져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 틈새 파고들어 세계 최고 업체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핀란드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는 무명(無名)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동 등 신흥 시장에 저가 휴대전화를 팔기 시작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불과 10여 년 사이에 세계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하는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소득 수준이 낮은 신흥 시장 소비자들이 싼 휴대전화를 원하는 점을 간파해 세계 최고 업체로 도약한 것.

1971년 4대의 항공기로 출범한 미국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도 메이저 항공사들이 즐비한 국내선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기내식 등 기초 서비스를 없애는 대신 운임을 낮추는 저가 전략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아 30여 년 만에 미국 유수의 항공사로 성장했다.

○ 선발 주자가 후발 주자 따라가기도

대한항공은 다음 달 초 저가 항공사인 ‘에어코리아’를 설립하고 5월부터 국내선에 항공기를 띄우기로 했다. 대한항공만으로는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

지금까지 저가 항공시장 진출에 부정적이던 아시아나항공도 궤도를 수정했다. 저가 항공사의 국제선 취항이 가시화되면서 저가 항공사 설립을 검토키로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도 ‘타타자동차’가 대당 2500달러(약 237만 원)로 세계 최저가 승용차인 ‘나노’를 내놓자 르노-닛산과 폴크스바겐 등 세계 메이저 자동차회사들이 ‘나노’와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키로 하는 등 저가 차 개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적정 시장규모 유지 안 되면 손실

저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관건은 원가 절감 능력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원가를 지속적으로 낮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저가 시장은 ‘박리다매(薄利多賣)’ 특성이 있는 만큼 적정한 시장 규모가 유지되지 않으면 손실을 보기 쉽다.

한양대 홍성태(경영학부) 교수는 “저가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가 국내 시장에선 성공을 거뒀지만 해외 시장 개척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제주항공 등 저가 항공사들이 국제선 취항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 하락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저가 시장에 뛰어들어 ‘싸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굳어지면 나중에 프리미엄급 시장으로 진출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장은 “한번 ‘저가’ 낙인이 찍히면 지우기가 힘들다”며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저가 시장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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