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카 라이프]진로를 바꾼 아우토반의 감동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1991년 1월 독일 아우토반.

하이델베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A5 도로에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기자는 시속 200km로 1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종은 배기량 1800cc급의 ‘아우디 80’으로 5단 수동변속기 모델.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초고속이어서 발끝이 떨려 왔다. ‘이 정도면 나를 추월하는 차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도 잠시. 20여 초를 그렇게 달리자 어느새 시커먼 차가 뒤에 와서 붙었다. 2차로로 피해 주자 검은색 차는 쏜살같이 달려 금세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시속 200km로도 아우토반의 1차로를 차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아우디80은 배낭여행 중에 만난 3명의 대학생과 돈을 모아 슈투트가르트에서 렌트한 차였다. 처음에 렌터카 사무실에 가서 현금을 제시하자 직원은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 다행히 아버지 신용카드를 빌려 온 일행이 있어서 우여곡절 끝에 렌트에 성공했다.

3일간 뮌헨 등 독일 남부지역을 무사히 둘러봤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공항 지점에 차를 반납하러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의 위기를 맞았다. 자동차 잠김방지제동장치(ABS) 기능이 없어 방향 전환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끄러지는 3초가 30분처럼 느껴졌다. 순진한 마음에 구속되는 것은 아닌지, 수리비로 집을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까지 어른거렸고 하느님께 기도도 올린 것 같다. 30여 m를 미끄러져 앞 차의 범퍼 1cm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기자는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험적이었던 첫 번째 유럽 방문의 목적은 사실 자동차 여행이 아니었다.

당시 철학을 전공했던 기자는 헤겔이 졸업한 튀빙겐대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꿈을 안고 독일을 방문했다.

그러나 대학의 구내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부부는 “학문에 대한 열정만으론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학 8년째지만 아직도 박사학위를 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동차여행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자동차를 다루고 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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