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타결]의약품 협상 득실과 전망

  • 입력 2007년 4월 2일 1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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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약품 협상은 상호 `이익의 균형'을 이루는 적절한 수준에서 타결됐다는 게 정부 측의 자체 평가다.

애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큰 양보 없이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해 우리 측 요구를 최대한 관철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전만복 한미FTA 국장은 2일 "지킬 것은 지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과는 달리 명분만 지켰다는 비판이 보건의료시민단체와 제약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미FTA협상에서 의약품 부문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될 정도로, 우리로서는 얻을 것은 별로 없고 본전조차 찾기 힘든 힘겨운 분야였던 게 사실이다.

우리 측 협상단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전 국장은 "한미FTA에서 의약품 분야는 골을 많이 넣기 보다는 골을 많이 먹지 않는, 공격보다는 수비를 잘 해야 하는 분야였다"고 말했다.

미측은 우리 측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갖가지 요구사항을 들이대며 거세게 압박했다.

좀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성동격서'의 전략적 협상태도였다.

신약의 최저가격 보장, 물가인상에 연동한 약값 인상, 의약품에 대한 비용 대비효과 등의 경제성 평가 도입 연기 등이나 국가 긴급사태시 의약품 특허를 무효화하는 강제실시권 발동요건을 제한해 달라는 등 수용 불가능한, 그야말로 `협상용' 요구를 하고는 슬그머니 거둬들이면서 그 대신 진짜 원하는 요구사항을 얻어냈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이익의 균형' 이뤘나

자료독점권,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독립적 이의신청 절차 마련 등 미측이 요구하는 핵심사항들을 대부분들어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로써 이른바 `개량신약'으로 불리는 유사의약품을 포함한 신약의 자료독점권을 인정하고 의약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해 국내 제약사들이 더 이상 신약의 특허가 끝나기 전까지는 신약의 임상시험 자료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신약의 주요 성분은 같지만, 부속 성분이 조금 다른 개량신약과 제네릭 의약품의 출시가 늦어지게 되고, 그 만큼 다국적 제약사가 신약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게 돼 국민 의료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국내외 제약사들이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와 가격 결정 과정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목적으로 도입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핵심인 선별등재방식이 무력화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보건의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미측의 요구를 수용해 양국 간 의약품 이슈들에 대한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할 정부 대 정부 차원의 의약품/의료기기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 복지부의 의약품 정책 결정구조를 뛰어넘는 구조가 탄생함으로써, 앞으로 복지부의 의약품 정책이 미국정부의 상시적인 `간섭'을 받게 될 수 있다고 보건의료시민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우리 측은 다국적 제약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의약품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리베이트 등 비윤리적 영업관행을 근절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가 손에 쥔 것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애초부터 우리 측이 요구할 게 별로 없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측이 초기 협상을 파행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주장했던 약제비 적정화 방안 폐지 요구를 철회하는 등 양국 보건의료제도의 차이를 인정받은 것 정도가 그나마 수확이라면 수확이라 할 수 있다는 인색한 평가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우리 측은 언제 실현될지 불투명한 몇 가지 양보를 얻어내긴 했다.

우수 의약품 생산 및 제조시설기준(GMP)과 제네릭 의약품 상호인정문제나 한의사를 제외한 보건의료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 문제를 논의하고 협력방안을 모색할 협의체와 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

복지부는 "이 같은 우리측 요구사항이 현실화되면 국산 의약품과 국내 보건전문인력의 해외 진출이 활기를 띠고 국제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 의약품시장에 주는 충격은..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호시절은 다 지나갔다며 냉엄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안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복제의약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중소형 제약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영업과 마케팅을 앞세운 카피약으로는 더이상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에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의 소용돌이가 휘몰아 칠 것이라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개량신약을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봤던 일부 대형 제약사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신약의 중심 약효 성분은 같되, 부속 성분을 일부 바꿔서 개발한 개량신약의 허가를 받기가 수월했지만, 앞으로는 진짜 신약을 만드는 것처럼 까다로운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상당히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빠져나갈 구멍이 다 막혀버렸다"며 "신약의 특허기간이 끝나고 난 뒤에 정식으로 제네릭 의약품을 만들거나 제대로 된 신약을 개발해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제네릭 의약품과 개량신약의 출시 지연은 다국적 제약사 신약의 특허 기간 연장으로 이어져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림으로써 비싼 오리지널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국내 의약품 소비자의 의료비 부담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관련,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미FTA 협상에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등 미국 측 요구대로 진행되면, 향후 5년간 최소 6천억원에서 최대 1조억원의 피해액이 예상된다고 말했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심지어 특허기간 연장이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무력화 등으로 인해 향후 5¤7년 간 10조¤12조의 건강보험재정 및 환자 비용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복지부는 "애국주의적 시각에 치우져 협상내용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부풀려진 피해 추정치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FTA 의약품 협상 타결에 따라 국내 제약산업이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제약업계와 함께 한미FTA 보건산업 민관실무대책반이 꾸려, 육성방안을 마련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제약협회 김정호 국제팀장은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국내 제약업계도 이제 신약개발의 능력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제수준의 GMP시설을 갖추는 등 국제화의 길을 걸어야하며, 이를 통해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약학회 회장인 전인구 동덕여대 교수(약제학)는 "국내 제약기업들이 대부분영세한 상황에서 신약개발에 너도나도 뛰어들 수 없는 처지"라며 "그래도 오리지널약과 품질이 동등 이상의 `틈새' 신약을 개발해 좁은 내수시장에만 머물지 말고 동남아 등 해외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를 위해 "정부차원의 연구개발 지원이 뒤따라야 하며, 전문인력 양성에도 힘쓰는 등 인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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