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몽준]‘FTA’가 10조원이면 ‘한미동맹’은 1000조원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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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미 간에 중요한 이슈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다. FTA가 체결될 경우 큰 피해를 보게 될 농민에게는 정부의 보상 대책이 관심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FTA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의 분열상이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민의 갈등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전시작전권의 경우 국민은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국민이 안보 문제에 대해 안전하다고 느끼느냐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한미동맹이 더 튼튼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두 가지 기준에 부합하면 추진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단해야 한다.

FTA에 대한 오해는 FTA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강화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사실은 반대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자그디시 바크와티 교수가 지적했듯이 FTA는 WTO의 기본 원칙인 최혜국대우(MFE·Most Favored Nation Treatment)원칙을 훼손하면서 FTA를 맺지 않은 나라에 차별적 대우를 함으로써 WTO의 존립기반을 위협한다. 한국의 경우 2004년 멕시코로 향했던 타이어 수출용 컨테이너선이 비 FTA 체결국에 대한 멕시코의 긴급관세 부과로 회항했던 경험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한국과의 FTA 체결이 정치적 업적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은 요르단 바레인 등 10여 개국과 FTA를 맺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경제규모가 작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인 한국과의 FTA 체결은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미 FTA 협상은 국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쌀과 의료, 교육 등 민감한 분야를 제외한다면 타결될 소지가 크다. 정부가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에는 금융, 법률 등 서비스 산업을 차세대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육성하려는 구상이 깔려 있다.

부시 행정부는 한미 FTA에 강한 집착을 보이지만 한반도 안보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금액으로 치자면 우리에게 있어 FTA가 10조 원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면 한미동맹은 1000조 원의 이익을 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그렇다 치고 한국마저 이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요즘 미국의 지도층 인사를 만나면 “한국이 미군의 철수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대다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해도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기 때문인지 화가 난 표정이다.

미 행정부에서 전시작전권 이양에 적극적인 쪽은 국방부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군사부문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했던 미국으로서는 불요불급한 곳에서 발을 빼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주’를 위해 전시작전권을 되찾아 온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은 미국 측에서 볼 때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격’인 셈이다.

우리가 착각해선 안 되는 점은 미국이 국내 여론에 민감한 선거 중심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이라크전쟁으로 비난 여론에 직면한 부시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부담을 줄이게 됐다’며 전시작전권 이양을 국내정치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런 태도를 보면서도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 미군을 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순진한 생각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사정을 알면서도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철수를 유도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군사 전문가는 전시작전권 환수 추진에 대해 “현찰을 약속어음으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의 명분을 ‘자주’ 때문이라고 주장하다가 지금은 ‘미국의 방침’을 근거로 내세운다.

눈여겨볼 대목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지만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진보적이라는 점이다. 전시작전권 같은 안보 문제에 대해 전직 국방장관 등 전문가는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만 비전문가들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절반이 걱정하는 문제를 지지도가 20% 수준인 정권이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다. 안보야말로 국민이 당사자이자 잠재적 피해자인데 당사자의 ‘걱정’을 무시한 채 국외자들이 ‘걱정할 필요 없다’며 강행하는 상황이 걱정스럽다.

정몽준 국회의원·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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