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무영]‘소니 딜레마’ 강건너 불 아니다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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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기업의 딜레마’라는 책을 보면 1950년대 미국 제니스 진공관 라디오를 제치고 업계의 판도를 뒤집은 한 일본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내세워 비싸고 덩치 큰 진공관 라디오에 관심이 없던 젊은 소비자 층을 공략한 ‘소니’라는 회사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와 그의 오른팔이자 후계자인 모리타 아키오, 이 두 엔지니어가 창업한 소니는 소비자 가전산업을 선도하는 일본 대표 기업이면서도 가장 일본 기업답지 않은 기업이다.

소니의 창업자들은 소니를 ‘탈(脫)일본’, ‘향(向)세계형’ 기업으로 키웠다.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제품 생산에 주력했고,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전개해 일본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미 뉴욕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십수 년 전 컬럼비아 영화사 매입을 필두로 글로벌 미디어 산업으로의 전략적 혁신도 시도해 왔다.

이제 소니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 또 한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새로 소니를 이끌게 된 하워드 스트링어 신임 회장은 어떻게 소니를 변모시킬 것인가. 63세인 그는 미 CBS방송에서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CBS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시킨 경력을 토대로 1990년대 말 소니의 미국법인에 합류했다. 그의 강점은 파면을 통고하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 이건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일거야”라고 수긍하게끔 만드는 인간적 흡인력에 있다고 한다.

오늘날 소니는 크게 오디오 비디오, PC, 게임, 미디어 사업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은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알려진 게임사업부밖에 없다. 소니 내부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성장이 둔화되면서 전략적 선택을 놓고 기술을 우선으로 여기는 엔지니어들과, 시장과 함께 호흡하려는 마케팅 부문 간에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링어 회장은 외부, 그것도 외국인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니의 미국법인을 개혁하면서 내부가 아닌 외부, 그것도 다른 업계에서 젊은 인재를 끌어왔다. 별다른 이익을 내지 못하는 컴퓨터 사업에서의 철수가 검토될 것이요, 홈네트워크 산업에서 표준화를 선도하지 못한다면 음향영상가전 사업도 접어야 할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의 대기업들도 소니처럼 성장 한계에 이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마다 준비경영이다, 신(新)성장동력 발굴이다 하며 고민을 하지만 획기적인 방안이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우리 기업은 강점인 ‘대규모 생산에 따른 효율성’을 되풀이해 적용할 수 있는 업종을 찾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전통적인 방식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류 기업은 소니가 1년간 버는 이익 규모를 한 달이면 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위기가 다가왔을 때 소니보다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은 매출의 87%를 해외에서 올리고 글로벌 생산기지를 완벽에 가까운 공급사슬로 묶어 시스템 경영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략적 변화를 시도할 만한 글로벌 인재를 키우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기업의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내부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준비작업이 필요한 때다.

신무영 경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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