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가계도 “아직 불안” 탈출구의 끝은…

  • 입력 2004년 10월 12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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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

정부는 2월 19일 2008년까지 200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은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을 포함해 19개의 일자리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이 같은 대책은 향후 5년 동안 매년 5%씩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경제성장률이 5%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여러 경제 예측기관에서 나오면서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 시행 첫해부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실제로 서비스업과 건설경기가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고용상황은 최근 들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 대책이 발표됐던 2월 말 3.9%였던 실업률은 6월까지 3.2%까지 낮아지는 듯했으나 8월에는 3.5%로 다시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취업자 수는 2월에 전년 동월 대비 50만7000명 늘었으나 연말이 다가올수록 줄면서 8월에는 25만6000명으로 증가폭이 주춤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일자리 대책으로 공공부문의 임시근로자가 늘면서 고용시장이 더 나빠지는 상황을 막고는 있지만 근로자의 지위는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노동부가 이달 초 발표한 노동통계조사에 따르면 7월 중 상용근로자 채용자 수는 11만6000명, 퇴직자 수는 12만3000명으로 퇴직자가 채용자를 초과하는 현상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병직 노동부 노동경제담당관은 “가장 안정적인 상용근로자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은 향후 경기상황에 대해 불안해하는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수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고용의 73%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생산이 8월 전년 동월 대비 1.7% 감소했다. 이는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의 수치다.

게다가 내년에는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이 3∼4%의 성장률을 점치고 있고 정부도 4% 성장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고용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12일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자리의 원천인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데 일자리 공급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정부는 일자리 대책을 발표만 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건설 경기▼

정부의 주택가격 안정대책은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챙기는 정책이다.

이 때문에 집값은 지난해 10·29부동산종합대책이 나온 뒤 지금까지 하향 안정세가 뚜렷하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인해 건설경기는 급랭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최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건설투자 증가율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건설선행지표인 건설수주 및 건축허가면적, 주택건설실적 등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정부는 7월 초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을 내놓았으나 이미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연착륙 방안은 △사회간접자본(SOC)에 연기금 투입 등 투자 확대 △서울 강북 재개발사업 조기 추진, 공동주택 리모델링 활성화 등 주택건설 지원 강화 △모기지론 취급 대상 금융회사 확대 등 주택수요 창출지원 △기업도시 건설지원 등 중장기 추진 과제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연착륙 방안에는 건설경기 위축 요인으로 꼽히는 재건축아파트 내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도 포함돼 있어 건설시장의 생리와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재건축 및 재개발 수주액은 8월 123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2조73억원에 비해 1조8838억원(93.8%) 급감했다.

또 내년부터 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해 늘릴 수 있는 면적이 전용면적의 20% 이내, 최대 7.6평으로 제한됨에 따라 리모델링 사업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SOC사업에 연기금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투자손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추진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 최종 확정되더라도 △사업구상부터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지기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리고 △시공능력을 갖춘 일부 대형 건설업체 위주의 정책이라고 건설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이번 재경위 국감에서도 논란이 됐다.

김양수(金陽秀·한나라당) 의원은 “(재경부가) 자꾸 연착륙을 이야기하는데 이미 경착륙하고 있다”며 “연착륙을 근거로 내년에 5%대의 성장률을 전망하는 것은 막연한 추측이며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건축은 ‘인력’이고 SOC사업은 ‘건설장비’와 관련된 것”이라며 고용과 연관성이 높은 건축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으면서 SOC 투자를 통해 건설경기를 연착륙시키려는 정부 계획을 비판했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중소기업▼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기업 현장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감돌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 8월 산업 활동 동향에 따르면 8월 중소기업 산업생산지수는 106.2로 전달(110.4)보다 4.2포인트 하락하면서 1월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8월보다 3.5% 증가한 것이지만 같은 기간 대기업이 15.3%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중소기업의 생산 활동은 여전히 ‘한겨울’인 셈이다.

체감 경기 전망도 여전히 어둡다. 기업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2004년 4·4분기(10∼12월) 중소제조업 경기 전망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4·4분기 경기실사지수(BSI)는 93으로 2·4분기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 자금난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이자를 갚지 못하거나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실제로 최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신용불량정보 관리 대상 법인은 9만9096개로 전달(9만8151개)보다 945개(0.96%) 늘었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간부회의에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금융시스템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7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세부 시행과제 137개를 선정해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금융지원 방안으로 자금난이 일시 해소됐지만 정책자금이 바닥을 보이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중소기업 대출 담당 임원은 “정부가 기업의 경쟁력에 따라 퇴출과 지원 등으로 차별화하는 지원 대책은 내놓지 않고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주라고 은행만 몰아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우제창(禹濟昌) 의원은 “대출 위주의 금융 지원은 채무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재무건전성에 도움이 안 된다”며 “현행 대출 위주의 기업 지원을 창업투자조합 등을 통한 투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신용불량자▼

정부가 올 3월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배드뱅크 도입, 신용회복위원회 기능 강화, 은행의 자체적인 신용회복 지원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신용불량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용불량자 구제프로그램을 통해 신용불량자 딱지를 뗀 사람은 35만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전체 신용불량자는 8월 말 현재 368만4000명으로 작년 말에 비해 3만5000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3월 세금체납자 15만190명, 5월 사망자 10만2000명 등 25만여명을 신용불량자 통계에서 제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신용불량자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11일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공식 발표되는 신용불량자 수는 지난해 말 372만31명에서 올 8월 현재 368만4678명으로 줄었지만 이는 세금체납자와 사망자 등을 통계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라며 “종전 기록대로 신용불량자 통계를 내면 8월 현재 신용불량자는 382만1214명으로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여기에 통신요금 연체자 61만여명, 백화점 카드 연체자 38만여명 등을 합치면 실질적인 신용불량자는 480만9517명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경제활동인구(2318만2000명)의 20.7%, 즉 5명 중 1명이 신용불량자인 셈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벗었다가 다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U턴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02년 10월부터 지난달 18일까지 개인워크아웃 신청을 통해 신용을 회복한 사람 20만3042명 가운데 1만567명이 다시 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신용불량자들이 좀처럼 줄지 않으면서 금융회사 부실이 커지고 내수회복도 어려워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용불량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부실대출 금액은 1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은 재경부 국감에서 “상당수의 신용불량자는 실업자이므로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중소기업 인력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용불량자는 소득의 50%를 채권기관이 회수하게 돼 있는데 법을 고쳐 이 비율을 낮춰주면 신용불량자들이 안심하고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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