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탈출 희망은 있다]<下>자활을 돕는 사람들

입력 2003-12-05 17:52수정 2009-10-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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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의 수호천사라 할 사회연대은행 RM 삼총사. 지난달 26일 경기 구리시 농수산물센터에 자리 잡은 한지공예품 업체 ‘구리한지랑’의 공방을 옮기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진배 팀장, 이종환 부장, 이민재 차장. 맨 오른쪽은 ‘구리한지랑’의 대표. -변영욱기자
《사회연대은행의 한진배(韓眞培·40) RM(Relation Manager)팀 팀장. 그는 재벌이다.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문어발식으로 11개나 되는 사업을 관리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봉제업, 제지업, 염색업, 요식업, 청소용역 등…. 업종도 다양하다. 한 팀장은 이 11개 업체의 한달 손익관리계산서를 두 차례씩 뽑는다. 실적이 나쁠 경우에는 즉각 그 자신이 경영구조 개선을 위한 트러블슈터(troubleshooter)로 나선다. 사업주에게 필요한 재교육을 실시하거나 유통망을 개선하고 상품 종류와 디자인은 물론 매장까지 바꾸는 조치를 취한다.》

이 11개 업체는 사회연대은행에서 무담보 무보증으로 창업대출이 이뤄진 여성가장 업체들이다. 물론 사업아이템이 우수해서 선정된 곳들이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이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장벽이 한둘이 아니다. 매장 위치는 어떻게 고를지, 판로는 어떻게 뚫을 것인지, 재고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

애완동물 옷 봉제업체인 ‘실과 바늘’은 출범 후 애완동물 붐에 맞물려 여기저기서 주문이 쏟아졌다. 처음엔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의류도매상과 상대하다 보니 외상거래가 많아 수금이 쉽지 않았다. 또 당장의 주문량만 믿고 물건을 생산하다가 재고량이 너무 늘었다. 이 때문에 한 팀장이 출동했다.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체제로 전환하라는 경영컨설팅 결과를 제시했다. 그리고 애견전문 사이트인 웅자닷컴과 조흥은행 사내 사이트의 입점을 주선해줬다. 할인마트의 입점을 통한 재고처리도 모색 중이다.

▼관련기사▼
- <上>사회서 버려진 新빈곤층
- <中>자활의 꿈 일구는 사람들

한지수공예품을 만드는 경기 구리시의 ‘구리한지랑’은 공방의 입지 선정이 급선무였다. 수공예품의 경우 직접판매 못지않게 수강생으로부터 받는 수강비와 재료비를 통한 수입구조가 긴요했다. 그러나 현재의 공방은 시장 한복판에 위치해 수강생 확보에 어려움이 컸다. 한 팀장은 임차보증금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해서라도 주택가나 아파트촌으로 옮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도권 주요 상가 위치는 지번만 들어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노웨어(know where)에 강한 RM팀이 발로 뛰며 대체입지를 모색 중이다.

경기 안산시의 분식집 ‘배꼽시계’도 최근 매상이 줄었다. 김밥과 라면 떡볶이 등 단조로운 메뉴가 고객의 입맛을 잡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 팀장은 돈가스 전문업체로부터 특별 요리지도를 받게 하고 메뉴 다각화를 하도록 조언했다.

이처럼 사회연대은행은 단순히 저소득층의 소액 창업만 지원하는 것이다. 일단 선정된 업체에 대해서는 창업준비에서부터 대출금에 대한 이자상환이 시작되는 3년 후까지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토털서비스를 실시한다. 이를 책임진 사람들이 ‘사회연대은행의 꽃’이라 불리는 RM이다.

현재 RM팀은 한 팀장과 함께 이종환(李宗桓·42) 부장과 최근 합류한 이민재(李敏宰·37) 차장 이렇게 3총사로 구성돼 있다.

한 팀장과 이 차장은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지원센터 컨설턴트 출신이다. 한 팀장은 맥도날드에서의 매장관리 경력을 살려 소자본창업 컨설턴트로 7년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이 차장은 세븐일레븐과 진로베스토어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통분야 소자본창업 컨설턴트로 활약해 왔다.

두 사람이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사회연대은행에 뛰어든 것은 소액창업은 창업 초기 상담을 넘어서 창업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절감해 왔기 때문이다.

“창업 상담을 하면서 아이템이 아무리 훌륭해도 경영마인드 부족으로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지켜봤죠. 그러다 사회연대은행의 구상을 듣고 ‘바로 이거다’ 싶더군요. 몸은 힘들어도 일에서 얻는 성취감은 비할 바가 아닙니다.”

사회연대은행 창립멤버인 이 부장은 인천 부평에서 빈곤층의 자활사업을 돕던 복지운동가 출신이다. 이 부장은 사회연대은행 발족에 참여하면서 RM 역할의 필요성을 깨닫고 자원해 배우면서 일하고 있다.

이 부장은 RM의 최대 덕목으로 따뜻한 마음과 네트워크 연결 능력을 꼽는다.

“사회연대은행의 후원을 받은 분들은 응어리가 커서 그런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습니다. 그렇게 여린 분들을 이끌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필요한 여러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들은 뭐가 돈벌이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에 대한 이해타산이 매우 빠르다. 재밌는 점은 그들의 임무가 그런 이해타산을 넘어선 곳에 있다는 것이다.

“저희 입장에선 솔직히 음식점 사업이 제일 쉽습니다. 하지만 고용창출효과도 적고 영세상인들과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대신 자활의지만 있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사업에 도전 중이죠.”

한 팀장의 말처럼 그들 역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길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도 대구와 광주, 경기 시흥시와 구리시 등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희망의 불씨를 지키는 수호천사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 중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돈만이 기부의 전부는 아니죠"▼

“저희는 돈 보다는 전문가의 시간과 지식의 기부를 기다립니다. 전문가의 한마디가 사회연대은행의 대출자들에게는 복음과 같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은 빈곤 문제를 시장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은행시스템을 통해 빈곤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주는 교육과 관리도 필수다. 사회연대은행의 RM은 그런 의미에서 시장에서 생존력을 키워주는 멘터(mentor)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멘터는 스스로 열심히 움직이는 개미형 보다는 그물을 활용하는 거미형이어야 한다. 어차피 다양한 사업 분야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두루 갖추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RM은 사업 초기 경영전반에 대한 지식을 교육시킨다. 그러나 사업이 출범하고 나서는 문제점 분석에 주력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위탁한다.

광고사 로뎀의 박찬익 실장은 사회연대은행 대출업체의 상호와 로고 등 기업이미지 작업과 간판 디자인을 무료로 맡아준다. 경기 안양의 분식집 ‘따뜻한 손맛’의 상호와 간판 디자인이 박 실장의 작품이다.

출판기획사 보람기획의 유남이 대리는 광주의 두부 제조업체 ‘두부마을’의 포장디자인을 만들어줬다. 지하식 세무사는 대출업체들의 세무상담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한미은행의 김인도 과장은 사회연대은행과 공동사업을 벌이려는 사업체의 건전성을 심사해주고 대출과 관련한 법률문제를 다룬다.

개별적인 도움을 주는 이들도 많다. 인터넷쇼핑몰의 무료 입점을 주선하거나 요리비법과 데코레이션 기술을 무료로 전수해주는 사람도 있다. 마케팅과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을 돕는 기업체 대표들이 있는가 하면 홍보 및 자료 수집을 돕는 대학생과 해외 유학생들도 있다.

현재 사회연대은행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디자이너이다. 구리한지랑(한지공예), 10 to 5(비즈공예), 실과 바늘(봉제) 등 상당수 업종들이 제품을 예쁘게 꾸미는 디자인 분야에 대한 요구를 많이 해온다.

그러나 어느 분야든 자신만의 노하우를 나눠줄 사람들은 대환영이다.

사회연대은행에 전문지식을 기부할 사람들은 사회연대은행 홈페이지(www.bss.or.kr)나 전화(02-2274-9637∼8)를 통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분야를 지정해 봉사에 나설 수 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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