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도 '선택과 집중'…선진국형 합리적 소비패턴 자리잡아

  • 입력 2003년 5월 2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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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비자들이 영리해지고 있다. 자신만의 분명한 소비 기준을 가지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소비에는 큰돈이라도 쓰지만 불필요한 소비는 과감하게 털어내는 ‘소비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당국의 대응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수침체 속에서도 이달 초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형 오페라 공연에는 평범한 20∼40대 회사원들이 1인당 10만원 이상 하는 자리를 가득 메운 데서 이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20, 30대 회사원들 사이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더 이상 ‘과소비’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개인의 취미생활이나 건강을 위한 소비가 늘면서 대당 50만원이 넘는 디지털카메라, 100만원이 넘는 러닝머신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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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효용이 크지 않은 불필요한 소비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최근 위스키 맥주 소주 등 ‘3대 주류(酒類)’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경기침체와 함께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변화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식산업이 불황에 허덕이는 것도 마찬가지.

예종석(芮鍾碩)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구조조정은 과거 선진국에서 나타났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외환위기 이전과 달리 환율거품이 빠진 ‘진정한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든 한국 소비자들이 합리적이고 개성 있는 소비방식에 급속히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만큼 기업의 경영전략이나 정부의 내수진작책에도 과거와는 다른 발상과 도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순화(崔順華) 수석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소비를 집중하는 ‘가치(價値)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소비자의 기호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금리인하를 하거나 대통령이 보란 듯이 골프를 치는 등 막연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디지털방송의 조기실시, 대형 벽걸이 TV의 특소세 인하 등 소비자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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