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우먼 25시]⑥일이냐 아이냐

  • 입력 2002년 7월 17일 17시 37분


“여직원을 뽑을 때 임신할 가능성이 높은 20, 30대 초반의 기혼 여성은 꺼리게 됩니다. 상담하다 임신해서 사라지면 고객이 싫어하죠.”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김혜정 사장(39)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성 최고경영자(CEO)이지만 업무효율을 감안할 때 현실은 간단치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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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이 취업문을 통과하더라도 주부가 된 뒤엔 다시 높은 벽에 맞닥뜨린다. ‘유능한 여성이었는데 결혼하더니 열정이 식었다. 아이를 낳더니 일은 부업쯤으로 여긴다’는 식의 편견이 적지 않다.

기혼 여성의 성공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대기업인 L사는 여성 임원을 외부에서 충원했는데 이혼 경력이 있었다.

미혼인 강모씨(29·여)는 “남성 동료들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반응해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임신하면 이전처럼 일에 매진하기 쉽지 않다. 일과 육아의 양립이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그래서 직장여성의 임신은 가족엔 축복이지만 회사 동료에겐 부담스러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도 갈등한다.

삼성증권 김기안 애널리스트(32)는 출산 전날까지도 오전 2시까지 야근을 하면서 보고서를 썼다.

“임신이 일에 지장을 주더라는 지적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좋은 선례를 남겨야 여성 후배들도 애널리스트로 일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반면 삼성전자의 김모 과장(31)은 임신이 확정되자 곧 동료에게 알리고 배려를 구했다. 김씨는 “인생의 시기마다 주력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서 “입사해 6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한 만큼 임신 중엔 아이를 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낳은 뒤의 상황은 대체로 더 나빠진다. 부실한 육아 시스템으로 맞벌이의 대부분은 평일에는 친정이나 시댁으로 아이를 ‘나르기’ 바쁘고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D건설의 안모 과장(33)은 2년 전부터 대전의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휴일마다 보러 다니다가 최근엔 개인사업을 알아보고 있다.

안 과장은 “프로답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없는데 그게 더 비생산적이었던 같다”고 말했다.

최근엔 ‘슈퍼우먼이 되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적 배려를 구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출산과 육아가 완전히 사적(私的)인 일이 아닌 만큼 ‘무리’하지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는 것.

두 자녀의 엄마인 국민은행 전영희 부장(48)은 “돌아보니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시간은 짧았다”며 “국가나 사회는 여성이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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